"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가짜 낙원을 깨고 나가는 인간의 처절한 존엄성 어느 날 문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거대한 세트장이라면 어떨까 하는 기괴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전시되는 삶'에 익숙해진 소셜 미디어 시대, 1998년에 개봉한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는 더 이상 먼 나라의 판타지가 아닌 우리의 자화상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돔 안에 갇혀 30년 동안 전 세계의 관중을 위해 연기해야 했던 한 남자... 오늘 저는 그가 바다 끝 벽을 향해 돛을 올렸던 그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용기를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평화로운 섬마을 '씨헤이븐'에서..
떠난 자의 뉴욕과 남겨진 자의 서울,그 사이를 흐르는 8,000번의 '인연'에 대하여 어느 날 문득, 내가 살지 않은 '또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만약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만약 그때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셀린 송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바로 그 지독한 '만약'이라는 질문을 '인연(In-Yun)'이라는 한국적 단어로 치유하는 마법 같은 작품입니다.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뒤로 하고 떠난 한 여자가, 24년 만에 첫사랑을 마주하며 겪는 감정의 파고를 아주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따라가 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12살 어린 시절, 서울의 골목길을 함께 하교하며 소박한 꿈을 나누던 나영과 해성으로부터 ..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늘 그랬듯이.낯선 땅에 뿌리 내린 할머니의 보따리와 우리 엄마들의 위대한 생존기 마트 한구석에서 미나리 한 단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 특유의 알싸하고 싱그러운 향을 맡으니 문득 79년생인 제가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 뒤편 냇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미나리 밭이 떠오르더군요. 그때는 그저 흔한 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를 본 뒤로, 저에게 미나리는 더 이상 나물이 아닌 '질긴 생명력'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낯선 미국 땅, 바퀴 달린 트레일러 집에서 시작된 한 가족의 처절한 뿌리 내리기... 오늘은 그 어떤 화려한 액션보다 뜨거웠던 우리 부모님들의 진심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영화..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블랙홀 너머에서 마주한 아빠의 눈물과 5차원의 사랑 어느 맑은 가을밤, 마당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며 문득 79년생인 제가 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가 떠오르더군요. 그때는 우주가 그저 미지의 모험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뒤로, 저에게 밤하늘은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이 아닌 '그리움'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딸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한 채 우주로 떠나야 했던 한 아버지의 처절한 약속... 오늘은 광활한 블랙홀보다 더 깊은 사랑의 중력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 황사로 뒤덮여 식량 위기에 처한 지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