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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길을 잃은 가장에게 영화 어바웃 타임이 들려준 답신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습니다. 내가 짊어진 '가장'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기보다는 그저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싶은 그런 날요. 저는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하늘을 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빠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리죠. "아빠, 아빠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겠어요? 제발 길 좀 알려주세요." 오늘 소개할 영화 〈어바웃 타임〉은 저처럼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우며 사는 모든 어른 아이들에게, 하늘에서 날아온 다정한 답장 같은 작품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팀(도널 루슨)은 21살이 되던 날,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가문의 놀라운 비밀을 듣게 됩니다. 바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팀은 이 능력을 사용해 꿈에 그리던 여인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와의 사랑을 쟁취하고, 완벽한 가정을 꾸립니다. 하지만 줄거리는 단순히 시간을 되돌려 행운을 얻는 판타지에 머물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라는 진실을 향해 영화는 아주 정갈하게 나아갑니다.
아버지의 유언: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보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돋게 좋았던 대목은, 암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행복을 위한 공식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가지 단계를 제안하죠. 첫째,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를 열심히 살아라. 둘째, 그 하루를 똑같이 다시 한 번 살아보라. 처음 살 때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점원의 미소, 창가에 비친 햇살—을 두 번째 살 때는 온전히 느끼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 매일매일이 전장 같고, 내일이 두려워 잠 못 이루던 저에게 이 메시지는 벼락처럼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늘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담보 잡히고 살잖아요. 하지만 영화 속 아버지는 말합니다. 진짜 인생의 묘미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네가 무심코 지나친 그 사소한 1분 1초에 있단다.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마치 아빠가 제 옆에 앉아 제 등을 토닥여주며 너무 애쓰지 마라, 다 괜찮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외로운 길 위에서
저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으로서 늘 어깨가 무겁습니다. 가끔 너무 힘들 때 아빠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셨을까? 질문을 던지는 건, 아빠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견뎌온 그 침묵의 세월을 이제야 제가 걷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팀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화려한 성공을 선택하는 대신 그저 아빠의 거친 손을 잡고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빠,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아요? 나 잘 살고 있어요? 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팀의 입을 빌려 답해줍니다. 최고의 시간 여행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혹은 두 번째 사는 날인 것처럼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것이라고요. 그게 바로 아빠가 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길 이 아닐까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빌 나이와 도널 루슨, 대화가 필요 없는 부자(父子) 미학
배우 빌 나이의 연기는 정말 경이롭습니다. 힘을 뺀 채 툭툭 내뱉는 말속에 담긴 깊은 사랑, 그리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자식의 앞날을 축복하는 그 눈빛은 연기를 넘어선 삶의 품격이었습니다. 도널 루슨 역시 어리숙한 청년에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냈죠. 두 사람이 탁구를 치며 나누던 실없는 대화들, 그 소소한 일상이 사실은 인생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었다는 사실을 감독은 미장센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분석해 놓았습니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러브 액츄얼리〉보다 훨씬 더 성숙한 시선으로 사랑 을 정의합니다. 사랑은 뜨거운 불꽃이 아니라, 비 오는 날 함께 비를 맞으며 웃어주는 여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지켜봐 주는 인내라는 것을요. 런던의 비 오는 거리와 낡은 집, 그리고 귀를 간지럽히는 OST 'How Long Will I Love You'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따뜻한 솜이불처럼 감싸 안아줍니다.
결국 〈어바웃 타임〉은 저에게 묻습니다. 너는 오늘을 얼마나 사랑했니? 라고요. 아빠에게 길을 묻던 저는 이제 깨닫습니다. 아빠는 이미 당신의 삶을 통해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을요. 묵묵히 일터를 지키고, 돌아오면 가족의 웃음을 확인하던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바로 정답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영화관을 나선 뒤 마주한 서울의 밤공기가 그날따라 유독 소중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이제 아빠처럼, 오늘 하루라는 기적을 온전히 살아내 보려 합니다.
나의 인생 평점: ★★★★★ (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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