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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버린 두 번째 도시락과 밤 10시의 공기,
79년생인 우리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를 다시 보는 이유
어제 밤, OTT 리스트를 뒤적이다 1989년작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꺼냈습니다. 화면 속 웰튼 아카데미의 엄격한 교정을 보는데, 갑자기 1997년 고등학교 교실 냄새가 확 끼치더군요. 쉬는 시간마다 삐삐 사서함을 확인하러 공중전화로 뛰어가고, 두 번째 도시락의 식은 밥을 꾸역꾸역 삼키며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견디던 그 시절 말이죠. 그때 우린 학교에서 영화 한 편 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대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 칸에 나란히 앉아 있었을 뿐이죠. 40대 중반이 된 지금, 2026년의 더 치열해진 입시 지옥을 사는 내 아이 곁에서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영화는 명문 사립학교에 부임한 국어 교사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과 그를 만난 학생들의 변화를 다룹니다. 교과서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말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 가르치는 키팅. 그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너희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90년대 후반의 고딩이었던 우리에겐 이 말이 하나의 판타지 같았습니다. 정해진 교복, 정해진 시간표 안에서 나만의 시를 쓴다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무뚝뚝했던 선생님들의 회전매와 2026년의 정교한 알고리즘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집니다. 모든 선생님이 엄격했던 건 아니지만, 가끔 매를 드는 선생님 앞에서는 숨죽여야 했고, 대부분은 조금만 참으면 대학 가서 다 할 수 있다며 우리를 달랬습니다. 그 시절의 억압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 거리감 이었다면, 2026년 지금 우리 아이들이 마주한 억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감옥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학생의 부족한 점을 1% 단위로 분석해내고, 입시 포트폴리오라는 이름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강요하는 시대. 매질은 사라졌지만, 아이들의 영혼이 쉴 틈은 그때보다 더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는 과연 '닐'의 아버지와 다른가
영화 속에서 연극 배우를 꿈꾸다 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한 '닐'을 보며 예전엔 그 아버지를 참 많이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가 된 지금,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아버지의 불안이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내 아이가 이 비정한 세상에서 낙오될까 봐, 더 안정적인 길로 등을 떠미는 그 마음 말이죠. 하지만 키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이의 생존을 위해 아이의 생기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요. 90년대의 야자 시간을 견딘 우리가, 2026년의 아이들에게 똑같은 형태의 장벽을 쳐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성찰하게 됩니다.
영화의 정점은 역시 학교를 떠나는 키팅을 향해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장면입니다. 그건 스승에 대한 존경 이전에, "나는 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내 영혼의 주인이다"라는 처절한 선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화려한 AI 튜터가 아니라, 저렇게 책상 위로 기꺼이 올라가 줄 진짜 어른 한 명, 그 온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남긴 숙제: 너의 시는 무엇이냐?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의 그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슬픈 눈빛은 우리 세대에게 영원한 '캡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시(Poetry)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도구라고 가르쳤죠. 90년대 후반, 밤 10시에 학교 교문을 나서며 마셨던 차가운 공기 속에 우리는 과연 어떤 시를 품고 살았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언어를 쥐여주고 있나요?
영화관을 나선 뒤 마주한 서울의 밤거리는 여전히 분주합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학원 버스에 몸을 싣고, 어른들은 성공의 지표를 계산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다시 본 사람이라면, 내 아이에게 공부해"라는 말 대신 오늘 네 마음의 날씨는 어떠니?"라고 물어줄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성적표의 숫자가 아니라, 부당한 정답 밖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 평점: ★★★★★ (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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