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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써니 리뷰: 79년생 아재가 밤잠 설쳐가며 쓴 추억 일기

    야, 너두 주인공이었어...
    79년생 아재가 영화 써니 보고 소주 한 잔에 쓴 고백

    어제 퇴근길에요, 편의점에서 무심코 '썬칩' 한 봉지를 샀거든요? 근데 그 봉지 딱 뜯는 순간 나는 짭조름한 냄새가... 아, 진짜 신기하게 1995년 고등학교 교실 뒷자리를 확 데려다 놓더라고요. 삐삐 사서함에 '1004' 번호 하나 찍히면 하루 종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그때 말이죠. 79년생인 저한테 영화 〈써니〉는 그냥 영화가 아니었어요. 뭐랄까, 서랍 깊숙이 처박아둔 낡은 사진첩을 들켜버린 느낌? 참 묘하더라고요.
    솔직히 줄거리야 뭐 특별할 거 있나요. 전학 온 어리바리 나미가 학교 짱 춘화네 팀에 끼어서 '써니'라는 이름으로 뭉치는, 우리 누나들이나 동생들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잖아요. 근데 이상하게 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혼났습니다. 강형철 감독이 참 무서운 게, 90년대 그 특유의 꼬질꼬질하면서도 따뜻했던 공기를 지금이랑 막 섞어놓는데... "야, 너도 한때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었어"라고 계속 말을 거는 것 같았거든요. 그게 40대 중반을 지나가는 저한텐 참 아프면서도 고마웠습니다.

    떡볶이 한 접시에 인생을 다 걸었지

    영화를 보면서 진짜 가슴이 툭 떨어졌던 장면이 있는데요. 그 예뻤던 소녀들이 25년 뒤에 마주한 현실이었어요. 누구는 떵떵거리는 사모님이 됐지만, 또 누구는 보험 팔러 다니며 비굴하게 웃어야 하고, 또 누구는 생활고에 찌든 얼굴로 나타나고... 아, 이게 진짜 우리 인생이구나 싶더라고요. 95년, 학교 앞 분식집에서 쫄면 하나 나눠 먹으면서 "우리 진짜 멋진 어른 되자!"고 새끼손가락 걸던 내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어떤 가면을 쓰고 버티고 있을까요? 공주님이 될 줄 알았더니만, 막상 되어보니까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이 된 우리 모습이 너무 닮아서 참 씁쓸했습니다.
    근데 말이죠, 이 영화가 진짜 명작인 이유는 그 슬픔을 축제로 확 뒤집어버리는 엔딩 때문인 것 같아요. 장례식장에서 보니 엠의 'Sunny'가 울려 퍼지고 멤버들이 다 같이 춤을 추는 그 장면... 아, 저 거기서 진짜 소리 내서 웃으면서 울어버렸습니다. 죽음조차 우리를 못 갈라놓는다는 그 투박한 끈이, 각박한 서울 살이에 지친 저한테 "야, 임마. 너 참 잘 살아왔어"라고 등을 툭툭 쳐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 투박한 위로 한 마디가 소주 한 병보다 훨씬 더 사람을 취하게 하더라고요.

    우리 엄마, 아빠의 굽은 등... 이제야 보입니다

    나미가 친정 엄마 찾아가서 애처럼 엉엉 우는 장면 기억나세요? 그 장면 보는데 자꾸 우리 엄마, 아빠 얼굴이 눈앞을 가려서 한참을 멍청하게 있었습니다. 95년, 제가 한창 교복 줄여 입고 나이키 에어 포스 하나 사달라고 떼쓰던 고등학생일 때... 그때 부모님이 딱 지금 제 나이였겠더라고요. 자식 새끼 기죽지 말라고 당신들은 얼마나 많은 설움과 화를 가슴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고 사셨을까... 그땐 당연한 줄 알았던 그 사랑이 이제는 다 갚지 못한 빚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이제는 '꼰대' 소리 들을까 봐 입을 닫게 되는 제 모습을 봅니다. 나는 과연 영화 속 춘화처럼 내 사람들에게 든든한 나무일까요? 아니면 1995년 그 소년의 순수함은 다 팔아먹고 숫자랑 이익만 따지는 메마른 인간이 된 걸까요? 이 영화는 저한테 따끔하게 묻더라고요.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내 인생이라는 편지에 얼마나 진심 어린 마침표를 찍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요.

    아날로그가 주는 지독한 향수

    감독의 디테일은 진짜 소름 돋는 수준입니다. 나이키랑 프로스펙스 가방 하나로 싸우던 그 유치한 자존심 대결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별밤'에 사연 보내놓고 내 이름 불릴까 봐 새벽 2시까지 숨죽이고 기다리던 그 떨림까지...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 79년생인 저에겐 세상 그 어떤 명품보다 귀한 선물이 됐습니다. 추억은 결국 우리가 오늘을 버티게 하는 강력한 연료라는 걸 영화가 미장센 하나하나로 증명하고 있더라고요. 아, 그때의 우리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배우들 눈빛도 잊을 수가 없어요. 유호정, 진희경 같은 큰 선배님들의 깊이 있는 모습도 좋았지만, 심은경, 강소라... 그리고 그 독기 품은 연기를 보여준 천우희 배우까지. 이들의 조화는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기록물로 올려놓았습니다. 이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제가 잊고 살았던 '내 안의 소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훈훈해졌습니다.
    나의 인생 평점: ★★★★★ (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