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평소 무뚝뚝하던 신랑이 연신 눈물을 훔쳤습니다.
영화 '국제시장'과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
어느 주말 저녁, 신랑과 나란히 앉아 영화 〈국제시장〉을 봤습니다. 사실 몇 번이나 TV에서 해줬던 영화라 전 그냥 가벼운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중반쯤 지났을까요?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평소 감정 표현이 거의 없던 무뚝뚝한 신랑이 연신 휴지로 눈물을 닦고 있더라고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일찍부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남들 앞에서 한 번도 약한 모습을 안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밤, 젖은 휴지 더미를 보며 저는 우리 신랑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년'과 그 소년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버지'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는 6.25 전쟁 당시 흥남 철수의 비극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 덕수(황정민)는 피난길에 아버지와 여동생의 손을 놓치고 맙니다. 네가 이제부터 이 집의 가장이다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는 어린 덕수에게 평생을 짊어질 지독한 숙명이 됩니다. 사실 영화 자체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훑어가지만, 제 눈엔 그 역사보다 자기 인생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한 남자의 희생이 더 크게 들어왔습니다.
독일 탄광과 베트남 전장, 그 모든 건 자식 때문이었네
영화를 보며 우리 신랑이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은 덕수가 동생들의 학비를 벌려고 독일 탄광으로, 또 베트남 전쟁터로 떠나던 장면들이었습니다. 신랑 역시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 동생들 챙기랴 엄마 걱정하랴 남들 대학 갈 때 본인은 일터로 나가야 했거든요. 영화 속 덕수가 무시당하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데, 신랑은 그게 꼭 자기 이야기 같았나 봐요. 아버지,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독백하는 덕수의 대사에서 신랑의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는데 저도 정말 가슴이 미어져서 혼났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찾기 장면은 정말 반칙이었습니다. TV 화면 가득 찬 절규와 눈물을 보며 신랑은 아예 얼굴을 파묻고 울더라고요.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가슴 속 어딘가에 꽁꽁 묶어두었던 그리움 이라는 고름이 터져 나온 것 같았습니다. 덕수가 평생을 지켜온 꽃분이네 가게가 단순히 장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지막 약속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울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신랑의 눈물 뒤에 숨겨진 시아버님의 그림자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신랑이 조용히 말하더라고요. 우리 아버지도 저랬겠지? 자식들 안 굶기려고 밖에서 온갖 수모 다 겪으면서도 집엔 웃으면서 들어오셨겠지? 그 말을 듣는데 자꾸만 제가 직접 뵙지 못한 시아버님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의 청춘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얼마나 많은 꿈을 보따리에 싸서 구석에 밀어두고 사셨을지... 그땐 당연한 줄 알았던 그 사랑이, 이제야 40대가 된 아들의 눈물이 되어 쏟아지는 걸 보며 참 많이도 아팠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우리 신랑을 봅니다. 퇴근길에 어깨 축 늘어져 들어오면서도 아이들이 달려 나오면 금세 표정을 고치고 웃어주는 모습. 나는 과연 덕수 같은, 그리고 아버님 같은 내 남편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고 있을까? 이 영화는 저에게도 따끔하게 한마디를 던지더라고요. 남편이라는 이름표 뒤에 숨겨진 한 남자의 고독을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안아준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성공해서 떵떵거리는 것보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을 끝까지 지켜내는 게 진짜 인생의 훈장이라는 걸 덕수의 삶이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아닌 진짜 삶의 냄새를 담은 영화
윤제균 감독의 연출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디테일만큼은 소름 돋을 정도입니다. 70~80년대 부산 자갈치 시장의 시끌벅적함부터, 파독 광부들의 검은 탄가루가 섞인 눈물까지... 이 사소한 풍경들이 우리 세대와 윗세대에겐 세상 그 어떤 명품보다 귀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추억은 결국 우리가 오늘을 버티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연료라는 걸 영화가 미장센 하나하나로 증명하고 있더라고요. 황정민 배우의 노인 연기는 분장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굽은 허리에서 진짜 우리 아버지들의 냄새가 났거든요.
오달수, 김윤진 배우와의 호흡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자칫 너무 무거울 수 있는 서사를 특유의 유머로 풀어내면서도, 감정의 끈은 절대로 놓지 않는 그 솜씨... 이들의 조화는 이 영화를 단순히 우는 영화가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기록물로 올려놓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자리를 못 뜨고 울던 신랑을 보며, 제가 잊고 살았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중력'이 다시금 저희 부부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었습니다.
나의 인생 평점: ★★★★★ (5.0/5.0)
'국내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써니 리뷰: 79년생 아재가 밤잠 설쳐가며 쓴 추억 일기 (1) | 2026.01.11 |
|---|---|
| 벌새 해석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은희 성장통의 모든 것 정밀 리뷰 (1) | 2025.12.05 |
| 헤어질 결심 리뷰|해준과 서래를 바라보는 방식이 오래 남았습니다 (0) | 2025.11.26 |
| 3분 16초 만에 살인자가 되었다. '빽' 없는 우리가 조작된 세상에 던지는 처절한 반격 (영화 조작된 도시 리뷰) (0) | 2025.11.23 |
| 영화 올빼미 리뷰: 유해진의 낯선 얼굴에서 광기를 읽다 (1) |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