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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리뷰 1994년의 붕괴와 은희가 버텨낸 작은 날갯짓의 기록
어떤 영화는 처음 볼 때보다 다시 볼 때 더 아프게 남습니다. 벌새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은희의 무기력함과 잔잔한 일상이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은희의 하루하루가 왜 그렇게 버거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도 지나왔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정, 학교에서 이유 없이 눌리던 감정, 세상을 향해 손을 뻗으면 공기만 잡히는 듯한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이 은희의 몸짓 속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습니다.
1. 가족 안에서 누구에게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아이
영화를 다시 보며 가장 오래 남았던 것은 은희가 집 안에서도 한 번도 중심에 서본 적 없는 아이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족은 있으나, 정서는 비어 있는 구조. 부모는 늘 바빴고, 돈을 버는 일에 몰두했고, 집 안의 감정을 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빠는 폭력적이고 언니는 지쳐 있었고, 은희는 마치 가족이라는 구조 안에서 투명인간처럼 떠다녔습니다.
어릴 적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다정한 가족처럼 보였던 시절에도, 누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적이 있었나 하면 막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때의 느낌이 은희에게서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식탁에 앉아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은 감정, 집이라는 공간이 안전하지 않을 때의 무력함. 영화는 이런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 줍니다.
은희는 부모의 관심을 갈망하면서도, 결국 아무도 자신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그래서 더 외로웠을 것입니다. 다른 가족 구성원도 저마다 상처가 있지만, 은희는 그 한가운데 끼어 있으면서도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을 품고 있습니다. 영화 속 그 조용한 카메라 워크와 정적인 대사들이 오히려 은희의 고독을 더 크게 증폭시킵니다.
그녀가 끊임없이 주변을 서성이고 작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불안을 달래는 모습은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의 가장 현실적인 몸짓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은희가 집에서 웃는 장면보다 혼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침묵이 그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2. 개인의 붕괴와 시대의 붕괴가 동시에 흔들리던 1994년
벌새가 특별한 이유는, 은희라는 소녀의 성장통을 대한민국 사회가 겪었던 거대한 사건과 겹쳐 놓았다는 점입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는 당시 한국 사회를 뒤흔든 재난이었습니다. 경제 성장의 그림자와 구조적 부실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지만, 그저 조용히 화면 속을 지나가게 합니다. 그러나 그 몇 초의 장면이 은희의 일상 깊숙이 파고듭니다. 마치 은희가 겪는 개인적 붕괴와 사회적 붕괴가 교차하는 것처럼. 은희는 귀 뒤의 혹 때문에 수술을 받고, 자신의 몸이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합니다. 그 부서지는 경험이 성수대교 붕괴 장면과 함께 엮일 때, 영화는 말없이 한 가지 진실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나라의 균열은 결국 가장 작은 인간에게 고스란히 떨어진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며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의 불안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른들은 그저 무심하게 지나가던 뉴스였지만, 어린 마음에는 세상이 정말 무너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스며들었습니다. 영화 속 은희에게 성수대교 붕괴는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건이 아니지만, 그녀의 세계가 얼마나 취약하고 흔들리기 쉬운지를 상징하는 장치처럼 보였습니다.
은희가 겪는 감정적인 균열과 사회적 붕괴가 동시에 스크린에서 맞물릴 때, 관객은 이 영화가 단순히 청소년 성장담을 넘어 시대 자체의 균열을 기억하게 하는 기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994년이라는 시점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느껴집니다. 시대는 흔들리고 있었고, 아이들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3. 영지 선생님이라는 작지만 단단한 빛나는 존재
벌새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영지 선생님입니다. 한 번도 은희를 평가하거나 몰아세운 적 없는 유일한 어른. 누군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에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곁에 있어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릅니다.
저에게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비슷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무 판단 없이 "너는 괜찮다"라고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던 기억이 영화와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의 10대 시절이 얼마나 더 불안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보여 준 태도는 단순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뛰어넘습니다. 그녀는 은희에게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법,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 혼자 아프지 않는 법을 알려줍니다.
영지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 장면은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지만,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는 문장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우리는 모두 흔들리지만, 결국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그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
힘들 때는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 삶이 가진 고통을 함께 상상해 보렴. 그러면 조금은 덜 외로울 거야.
이 내용이 영화에 실제 등장하는 문장은 아니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 이런 메시지입니다. 누군가와의 조용한 연대,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4. 다시 보는 관객의 감정으로 완성되는 영화
벌새는 제작자의 의도대로만 완성되는 작품이 아닙니다. 관객의 나이, 삶의 경험, 당시의 기억에 따라 매번 다르게 읽히는 영화입니다. 어느 날 보면 은희가 안쓰럽고, 다른 날 보면 은희가 굳건해 보입니다. 또 어떤 날 보면 영지 선생님의 눈빛이 더 크게 와닿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이 영화가 더 아파졌습니다. 14살의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고, 14살의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묵직해집니다. 벌새는 화려한 장면 하나 없지만, 관객의 감정 깊은 곳을 가장 세밀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진짜 미덕은 그래서 ‘조용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은희가 소리치지 않음에도 우리는 그녀의 고통과 희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은희가 흘리는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성장의 증거이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집니다. 벌새는 날개를 너무 빨리 치면 금방 지쳐 버리지만, 은희의 날갯짓은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끈질김이 우리 모두의 10대 시절과 겹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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