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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빼미 리뷰: 눈먼 침술사가 목격한 왕의 비밀, 유해진의 얼굴이 이토록 무서웠나?

    눈먼 침술사가 목격한 왕의 비밀,
    유해진의 얼굴이 이토록 무서웠나?

    적막한 금요일 밤, 거실 불을 모두 끄고 오직 TV 화면에만 집중해 보았던 영화 '올빼미'는 저에게 기분 좋은 배신감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평소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했던 유해진 배우가 왕의 옷을 입고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저는 소름이 돋아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내가 알던 그 유해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그 광기 어린 얼굴... 영화가 끝나고 불을 켰을 때, 눈앞의 환한 세상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 지독한 어둠의 서사에 깊이 빠져들었던 기억을 남겨봅니다.
    영화는 인조실록에 기록된 소현세자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팩션(Faction)' 사극입니다. 세자의 몸에 있는 구멍마다 피가 쏟아져 나왔다는 기이한 기록 위에, 감독은 '주맹증'을 앓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라는 인물을 던져놓았습니다. 낮에는 장님이지만 밤에는 희미하게 앞을 볼 수 있다는 이 기발한 설정은, 모두가 보고도 못 본 척해야 살아남는 궁궐이라는 괴물 같은 공간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놓습니다.

    유해진, 매번 다른 결을 그려내는 연기 천재의 재발견

    솔직히 처음 유해진 배우가 '인조' 역할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동안의 유쾌한 이미지가 사극의 무거운 왕 역할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영화 속 유해진은 제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자신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비겁함, 구안와사로 일그러진 얼굴 근육 하나하나까지... 그는 권력이라는 독배를 마시고 서서히 미쳐가는 인간의 광기를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그의 연기가 특히 좋았던 이유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연기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나약한 아버지처럼 보이다가도, 찰나의 순간에 교활한 정치가의 눈빛으로 돌변하는 그 몰입력... 덕분에 관객인 저는 영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류준열 배우의 절제된 연기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이 영화를 단순한 사극을 넘어선 최고의 심리 스릴러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보는 눈, 그리고 침묵의 무게

    영화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경수는 밤에만 세상을 볼 수 있는 '올빼미'였지만, 사실 우리 사회 역시 수많은 올빼미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입니다. 진실을 분명히 보고도 내 안위를 위해, 혹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우리네 삶의 서글픈 생존 방식은 아닌지 성찰하게 되더군요. 영화 속에서 경수가 목숨을 걸고 "내가 봤습니다!"라고 외치는 그 짧은 순간이 그토록 묵직하게 다가온 것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내뱉고 싶었던 양심의 절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의 눈치에 익숙해진 저의 모습도 돌아봅니다. 훗날 제 아이가 저에게 "세상은 왜 이토록 불공평해요?"라고 물을 때, 저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경수처럼 대단한 용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둠 속에서 마주한 진실을 스스로 속이지는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 인생의 시간 속에서 제가 지켜야 할 것은 더 높은 자리가 아니라, 어떤 어둠 속에서도 나 자신의 영혼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맑은 눈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빛과 어둠, 시각적 제한이 만들어낸 사극 미학

    안태진 감독의 연출력은 경이롭다는 표현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주인공의 주맹증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하려는 듯 아웃포커싱과 조명을 활용한 장면들은, 보는 저조차 답답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진실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는 롱테이크 장면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심리적 압박감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보여졌습니다.
    이 영화는 "눈을 감고 살면 편한 세상"이라는 대사처럼, 비겁한 평화와 위험한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파헤쳤습니다. 화려한 CG 없이도 좁은 침전 안에서 오가는 대사와 배우들의 눈빛만으로 이토록 거대한 서사적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영화 관람 후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들

    1. 실화와 허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요?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맹인 침술사'라는 허구의 목격자를 세워 비극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실제 역사적 기록 한 줄을 이토록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감독의 역량이 돋보입니다.

    2. 유해진 배우의 연기 변신, 정말 성공적이었나요?

    단언컨대 그의 연기 중 가장 빛나는 순간입니다. 코믹함을 완전히 지워내고 인간의 비열함과 공포를 연기한 그의 모습은 '배우 유해진'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무한한지 증명해 보였습니다.

    3. 영화의 엔딩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경수가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를 향해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그리고 그 진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평범한 소시민이 거대한 권력에 균열을 내는 방식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저를 도닥여주는 듯한 따뜻한 위로를 동시에 건네주는 엔딩이었습니다.

    나의 인생 평점: ★★★★☆ (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