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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란 대체 뭘까요. 같은 성을 쓰는 사이? 명절에 모이는 사람들? 법적으로 등록된 관계?

    영화 〈담보〉(2020, 강대규 감독)를 보고 나서 이 질문에 대한 제 답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은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닙니다. 시간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관계입니다.

    빚 대신 아이를 받아온 두 남자

    두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사채업자입니다. 돈 받으러 갔더니 채무자가 현금 대신 9살짜리 딸 승이를 내밀어요. "돈 만들 때까지만 맡아주세요." 황당한 설정이죠. 사채업자 두 명이 어린아이를 맡게 되다니. 코미디 설정인 것 같으면서도, 이 영화는 거기서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향합니다.

    처음에 두식은 승이를 짐짝 취급합니다. 밥도 대충 사주고, 잠도 대충 재우고, 빨리 이 귀찮은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종배는 그나마 아이에게 좀 더 마음이 가지만, 두식은 단호합니다. "우린 사채업자야. 남의 아이 돌볼 처지가 아니라고."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

    이 영화의 진가는 두식의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감독은 이걸 급하게 처리하지 않아요. 특별한 사건이 벌어져서 갑자기 "이 아이를 지켜야겠다!" 하고 각성하는 게 아닙니다. 승이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두식 스스로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두식이 아이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장면이에요. 대사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승이가 옆에 있으면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아이가 잠들면 밖에 나가서 피우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쌓여서 두식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줍니다.

    성동일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성동일 배우는 이런 역할의 정석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거칠고, 말도 퉁명스럽고, 표정도 무뚝뚝한데 속은 여린 사람. 이 간극을 연기하는 데 성동일만큼 자연스러운 배우가 한국에 또 있을까 싶어요.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승이가 아플 때 당황하는 장면, 아이 학교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장면, 승이의 엄마가 데리러 오겠다고 했을 때 말없이 창밖을 보는 장면. 이런 순간들에서 성동일 특유의 따뜻한 서투름이 빛납니다.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힘이, 이 배우의 가장 큰 무기인 것 같습니다.

    웃기다가 울리는 구조

    이 영화는 전반부가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사채업자 두 명이 아이를 돌보는 어설픈 모습이 웃기거든요. 분유를 타는 법을 모르고, 아이 옷을 사러 갔다가 사이즈를 틀리고, 재우려고 하면 안 자고 울고. 극장에서 웃음소리가 자주 터졌습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웃음이 점점 눈물로 바뀝니다. 정확히 어느 장면에서 눈물이 터지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에서도, 시간을 함께 보내면 이렇게 진짜 가족 같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에 저는 참지 못하고 폭풍 눈물을 흘렸습니다.

    딱히 누구에게 권하는 영화가 아닌 모두가 다 보셨으면 해요.

    요즘 마음이 좀 지쳐 있다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따뜻한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면,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번 넓혀보고 싶다면. 울 준비만 살짝 하고 보시면 됩니다. 특별히 성동일 배우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두식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따뜻한 캐릭터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히 휴대폰을 꺼내 가족 단톡방을 한 번 더 들여다봤습니다. 평소엔 무심하게 넘겼던 가족들과의 대화들이 좀 더 소중하고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그렇게 별일 없는 시간을 오래 같이 보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