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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공교롭게도 계급 불평등을 다룬 영화 두 편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고, 다른 하나는 스페인에서 건너온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의 〈더 플랫폼〉입니다. 둘 다 "위에 사는 사람과 아래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같은 주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보면 훨씬 재미있어서, 이번 글에서는 나란히 놓고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반지하와 대저택 — 기생충이 그리는 계급
기택(송강호) 가족은 반지하에 삽니다. 창문 절반이 지하에 묻혀 있어서 해가 잘 안 들어오고, 비가 오면 하수구 냄새가 올라옵니다. 와이파이도 윗집 것을 훔쳐 쓰고, 피자 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가 이 가족의 주 수입원이에요.
반면 박 사장(이선균) 가족의 집은 넓은 잔디밭에 햇살이 쏟아지는 언덕 위 대저택입니다. 같은 도시에 사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 봉준호 감독은 이 두 세계를 "높이 차이"로 시각화합니다. 기택 가족은 항상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박 사장 가족은 항상 위에서 내려다봅니다. 계단을 올라가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선이 이 영화에서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 세어보면 놀라실 거예요.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천재적인 장치가 있습니다. "냄새"예요. 반지하의 냄새. 기택 가족은 자기들에게서 냄새가 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박 사장은 느끼죠. 코를 찡그리면서. 이 냄새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완벽하게 위장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계급의 격차가 물리적으로 몸에 배어 있다는 잔혹한 표현입니다.
위층과 아래층 — 더 플랫폼이 그리는 계급
〈더 플랫폼〉은 기생충보다 훨씬 직접적입니다. 거대한 수직 구조의 감옥이 있고, 수백 개 층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매일 한 번, 거대한 플랫폼에 산해진미가 실려 맨 위층부터 내려옵니다. 위에서 먹고 남긴 것만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예요.
1층에 있으면 최고급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50층쯤 되면 이미 반쯤 먹다 남은 음식만 있고, 100층 아래로는 거의 남은 게 없습니다. 200층 이하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잔인한 설정이 하나 더 있는데, 매달 층이 랜덤으로 바뀝니다. 이번 달에 8층에서 호사를 누리던 사람이 다음 달에 171층에 배정될 수 있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위층에 있을 때 "나도 내려갈 수 있으니 아래를 위해 남기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최대한 먹어치우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는 걸, 이 영화는 가차 없이 보여줍니다.
같은 불평등, 다른 결론
두 영화 모두 계급 불평등을 다루지만 도달하는 지점이 다릅니다.
〈기생충〉은 구조적 절망을 이야기합니다. 기택 가족이 아무리 영리하게 위장하고, 아무리 열심히 올라가도 결국 반지하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 마지막에 기우가 "돈을 벌어서 아버지를 구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데, 관객은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비극입니다.
〈더 플랫폼〉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기 몫만 먹는다면, 전원이 생존할 수 있다." 수학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음식의 총량은 전체 인원을 먹이고도 남거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못 할까? 이건 시스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 본성의 문제입니다. 기생충이 "구조가 문제다"라고 말한다면, 더 플랫폼은 "구조도 문제지만 결국 인간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셈이에요.
내가 어느 층에 있는지 생각해본 밤
두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나서, 밤에 잠이 잘 안 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나는 지금 이 사회의 몇 층에 있는 걸까?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위해 내 몫을 조금이라도 양보한 적이 있나? 쿠팡에서 새벽 배송을 시키면서, 배달 음식을 주문하면서, 나보다 더 힘든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불편한 질문이지만,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영화를 같이 보시면 그 질문이 더 선명해집니다. 순서는 〈기생충〉 먼저, 그다음 〈더 플랫폼〉 순서를 추천해요. 기생충으로 워밍업을 하고 더 플랫폼으로 마무리하면,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지실 겁니다.
두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계급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객을 안전한 위치에 두지 않고 끌어내립니다. 우리는 스크린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그 구조 안에 들어와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보고 나면 기분이 마냥 통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묘하게 씁쓸합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영화 모두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누가 옳고,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남깁니다.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인간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결국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될까?
아마 그래서 이 두 작품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보게 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집니다. 계급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국은 아주 개인적인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영화. 그래서 〈기생충〉과 〈더 플랫폼〉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두 영화가 성공한 이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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