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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건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욕창〉을 보고 그랬습니다. 엔딩이 올라가는데 눈에 눈물이 흐르면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특별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닙니다. "밥 먹었어?", "아빠는 뭐 해?", "요즘 무릎은 괜찮아?" 이런 평범한 안부요. 통화 시간은 3분도 안 됐을 겁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안 하던 전화를 왜 그 순간 했는지, 이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아마 아실 거예요.

    단순한 줄거리 뒤에 숨은 복잡한 감정들

    〈욕창〉(2019, 심혜정 감독)은 퇴직 공무원 창식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길순을 돌보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만 보면 단순해요. "남편이 아픈 아내를 간병한다." 이걸 한 줄로 정리하는 건 쉽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간병 영화"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는 창식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재중 동포 간병인 수옥에게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에 보내야 하는 사정이 있고, 딸 지수에게는 사춘기 아이와 불성실한 남편을 감당하면서 부모 간병까지 떠안은 고통이 있습니다. 말을 못 하는 아내 길순조차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요. 영화는 이 모든 사람의 상처를 편들지 않고 동시에 보여줍니다.

    딸 지수의 상황이 가장 마음 아팠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감정이입이 된 인물은 딸 지수였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키우고,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 중년 여성. 과일 장사를 하는 큰오빠는 여유가 없다고 하고, 작은 오빠는 사업 실패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연락도 뜸합니다. 결국 쓰러진 엄마와 늙어가는 아빠를 돌보는 건 딸인 지수의 몫이 됩니다.

    이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주변을 돌아보면 부모님 간병의 부담이 딸이나 며느리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아들은 "바쁘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빠지고, 정작 병원을 오가며 기저귀를 갈고 약을 챙기는 건 여성 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지수가 병실에서 엄마를 돌보다가 복도에 나와서 혼자 한숨을 쉬는 장면에서, 저는 제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욕창이라는 단어가 은유하는 것

    영화 제목이기도 한 "욕창"은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누워 있으면 피부가 짓눌려 생기는 상처입니다. 겉에서 봐서는 얼마나 심한지 모르고, 속이 얼마나 깊은지가 문제라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 "욕창"이라는 단어가 길순의 몸에 생긴 상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창식의 마음에도, 지수의 마음에도, 수옥의 마음에도 각자의 욕창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는 상처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무게를 견디다 보면 생기는 마음의 욕창. 감독이 이 제목을 고른 이유를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심혜정 감독의 시선

    심혜정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를 찍듯 건조하게 풀어냅니다. 슬픈 음악으로 눈물을 짜내지 않고, 극적인 사건으로 긴장감을 만들지도 않아요. 그냥 이 가족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간병인과 스케줄을 조율하고, 가끔 가족끼리 부딪히는 평범한 하루들.

    이 담담한 시선이 오히려 현실감을 극대화합니다. 간병이라는 건 원래 드라마틱하지 않으니까요.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같은 거잖아요. 감독은 그 무게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냈고,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든 생각

    엄마와의 통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지금 부모님이 건강하신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잖아요.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하면 되지 하는 미루기로, 안부 전화 한 통도 아끼게 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 영화는 그 "당연함"을 한번 깨뜨려줍니다. 깨뜨려주고 나서 뭘 하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아요. 그냥 깨뜨려놓고 끝입니다. 그 다음은 관객의 몫이죠. 저는 전화를 걸었고,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시는 분, 간병의 경험이 있거나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분, 혹은 가족이라는 관계의 무게를 한번쯤 느껴보고 싶은 분께 조용히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