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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저는 그해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갔습니다. 마스크 쓰고 간격을 두고 앉아야 했던 때라, 극장 조명 하나가 꺼지는 순간조차 낯설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만났습니다.
영화 초반, 자영이 종일 반복되는 사무보조 업무 속에서 서류 더미를 넘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아, 이 세계를 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 오랫동안 경험해 온 일터의 풍경과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영화가 “웃음 많은 직장 코미디”라고만 생각하고 들어갔지만, 몰입해갈수록 등장하는 감정은 뜻밖이었습니다. 잔잔한데 묘하게 아프고, 고요한데 계속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폐수 사건을 처음 발견하는 자영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그 장면은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주었다기보다, “이건 잘못된 일인데… 내가 말해도 될까?” 그 묵직한 질문이 관객 자리까지 그대로 흘러온 순간이었습니다.
극장을 나올 때, 저는 이상하게 조용했습니다. 크고 놀라운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영화가 더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뒤, OTT에서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느낌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영화가 그리는 감정선이 사실 굉장히 정교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폐수 샘플을 들고 달리는 장면’입니다. 처음 볼 때는 “용기가 멋지다” 정도로 느꼈지만, 다시 보니 전혀 다른 감정이 다가왔습니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건 화려한 정의가 아니라, “외면할 수 없어서 선택하는 행동” 그 자체였습니다.
유나와 보람의 비중도 다시 볼수록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결심하고 서로를 밀어주는 장면들, 누군가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함께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현실의 인간관계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가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 사람은 여전히 일개 사원이고, 큰 칭찬을 받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자라난 감정과 용기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남습니다.
두 번째 관람 때는 스토리보다 ‘감정의 결’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어떤 장면에서는 “왜 이 작은 행동들이 이렇게 크게 느껴질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큰 반전도 없고, 세계를 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회상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이유는 영화가 감정의 모양을 아주 섬세하게 붙잡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왜 행동을 망설이는지, 왜 작은 용기가 마음을 이끌어내는지, 왜 때로는 말 한마디가 하루를 바꿔버리는지. 영화는 이런 감정의 ‘과정’을 그립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처음엔 별 의미 없어 보였던 장면들이 도리어 핵심처럼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성장”보다 “결심”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어떤 성장도 거대한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오르는 게 아니라, 단 한 걸음의 결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회상하면 할수록 따뜻합니다. 화려하지 않은데 오래 남는 영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어딘가를 살짝 흔들고 가는 영화. 저에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 2020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다시 보니 감정의 깊이가 더 크게 느껴진 영화입니다.
- 화려한 영웅보다 ‘작은 결심’이 주는 울림을 담아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1990년대 분위기를 현실적으로 재현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Q. 이 영화는 실화인가요?
A. 특정 사건의 실화는 아니지만 90년대 기업 환경에서 영감을 얻은 설정입니다.
Q. 재관람 가치가 있나요?
A. 네. 첫 관람과 두 번째 관람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Q. 무거운 영화인가요?
A.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감정선이 깊게 남는 휴먼 드라마입니다.
-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 더램프㈜
- 기본정보: 영화진흥위원회 KOBIS
- 시놉시스: 공식 보도자료 기반 재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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