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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반지하에서 대저택으로 이어지는 계단 사이, 웃음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다시 보았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계급의 현실을 따뜻하게 풀어낸 영화 리뷰입니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 한국영상자료원(KMDb) / CJ ENM

     

    1. 처음 그 집을 바라봤을 때 — 낯설게 느껴진 평범함

    제목 기생충 (Parasite)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개봉 2019년
    장르 드라마, 스릴러, 블랙코미디
    OTT 2025년 현재 넷플릭스, 왓챠, 티빙에서 감상 가능

    처음 기생충을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공간’이었습니다. 반지하의 눅눅한 공기와 대저택의 건조한 고요함이 교차하는 그 대비는 단순한 세트처럼 보였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 두 공간을 통해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묘사했습니다.

    저는 첫 관람 때보다 두 번째 관람에서 훨씬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웃기고 신기했습니다. 박사장 가족의 대화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 보였지만, 어딘가 익숙했습니다. ‘저렇게 살면 행복하겠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도 저 집 안 어딘가에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감정이 스쳤습니다.

    기택 가족이 박사장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떨림은 단순히 긴장감이 아니라 사회적 벽을 넘는 감각이었습니다. 그 벽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단과 조명, 심지어 냄새로까지 표현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냄새’는 단순한 설정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신분의 경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숨 쉬지만 누군가는 들킬까 봐 코를 움츠리는 그 공기의 무게였습니다.

    비 오는 날, 반지하로 돌아간 가족의 장면을 다시 보며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저 장면을 불쌍하다고만 느낀 적이 있었나?” 사실 그 장면의 진짜 공포는 ‘습기’가 아니라 ‘익숙함’이었습니다. 기택 가족은 그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사고가 아니라, 반복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위대함은 ‘가난’과 ‘부’를 단순히 대립시키지 않는 데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관객이 양쪽 다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부자인 박사장 가족에게도 불쾌한 점이 있고, 가난한 기택 가족에게도 낯선 이기심이 있습니다. 그 중간에서 우리는 불편해집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바로 ‘진실’입니다.

    한 장면에서 박사장은 말했습니다. “선은 넘어오지 말아요.” 그 말은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고, 그 선은 결코 같은 세상에 살 수 없음을 상징했습니다. 저는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어디부터가 인간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이 영화는 ‘계단’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작품입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 그 사이에 끼인 사람들. 그리고 그 계단 아래에 숨은 또 다른 존재. 그 구조는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공간 안에는 인간의 욕망, 부끄러움, 생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 ‘기생충’의 시작은 가족이 아니라 ‘공간’이었습니다.
    그 집을 바라보는 시선, 그 안에서 숨 쉬는 공기, 그리고 그 아래에 숨은 진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의 반지하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 웃음 속에서 피어난 불안 — 우리가 몰랐던 가족의 작전

    기생충은 처음엔 코미디처럼 시작했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각자의 재능을 이용해 박사장 집으로 하나둘씩 스며드는 과정은 너무나 익살스러웠습니다. 위조된 서류, 연기력, 팀워크까지 완벽했습니다. 관객은 그들이 점점 성공해 가는 모습을 보며 묘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길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서 천천히, 불안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불안의 시작은 바로 ‘거짓’이었습니다. 기정이 가정부를 몰아낼 때의 표정, 기택이 운전기사로 합류할 때의 안도감. 그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연기였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도 모르는 죄책감이 스며 있었습니다. 관객은 웃다가도 갑자기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나라도 저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화의 중반부,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나고 기택 가족이 그 집을 차지하는 장면은 가장 해방되고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부자의 자리를 체험’했습니다. 소파에 눕고, 고급 와인을 따르고, 자유를 흉내 내며 행복해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진짜 지하실의 주인’이 등장했습니다.

    그 장면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구조를 뒤집는 지점이었습니다. 관객이 알던 위계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아래’에도 또 다른 ‘아래’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도 살아 있는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 그때부터 이 영화는 코미디에서 비극으로, 풍자로부터 공포로 변했습니다.

    지하실 문이 열리던 순간의 카메라 워크를 보면,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계산된 연출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조명은 인공적으로 어둡지 않았습니다. 대신 현실적으로 ‘습기 찬 노란빛’을 썼습니다. 그 빛은 숨을 막히게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이었습니다. 그 공간이 존재할 법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살인’이 아니라 ‘공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위에서 파티를 하고, 누군가는 아래에서 쥐 죽은 듯 살아갔습니다. 그 둘이 한 집 안에 존재한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존의 불가능함’이 결국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기택의 얼굴이 마지막에 일그러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눌러왔던 수치심과 자책감이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인간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는 기생충이 될 수 있다”는 잔인한 진실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 웃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불안’으로 끝났습니다.
    그들이 세웠던 완벽한 작전은 세상을 속였지만, 스스로의 양심은 속이지 못했습니다.
    ‘기생충’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위선을 합리화하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3. 봉준호 감독이 던진 질문 — 인간은 왜 서로를 미워할까

    두 번째 관람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지점은 ‘감독의 시선’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관객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는가?” “왜 불행의 원인을 항상 누군가에게 돌리는가?”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처음엔 단순한 비유처럼 들렸지만, 보면 볼수록 복합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누가 기생하고 있는가? 돈이 사람에게 기생하는가, 아니면 사람이 돈에 기생하는가? 이 영화는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기대고, 이용하고, 결국엔 모두 상처 입었습니다.

    감독의 렌즈는 놀라울 만큼 냉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냉정함 안에는 깊은 연민이 숨어 있었습니다. 기택의 얼굴을 비출 때, 박사장의 표정을 비출 때, 둘 다 같은 거리에서 담았습니다. 그 차가운 균형감이야말로 봉준호 감독 영화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는 ‘누가 옳은가’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며 느낀 것은,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택도, 박사장도, 심지어 지하의 남자도 각자의 이유와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완전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너무 인간적이었습니다.

    특히 엔딩 장면에서 기우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상상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희망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슬픈 이유는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을 버리지 못해서’였습니다. 그 희망조차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기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은 결국 인간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존중받기 위해 타인을 밟고,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 모든 행동이 비극을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기도 했습니다.

    💬 “기생충”은 우리 안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은 “누가 기생하느냐”가 아니라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였습니다.

    4. 한 계단 아래의 진실 — 내가 본 또 다른 나

    다시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머문 장면은 바로 ‘계단’이었습니다. 기생충에서 계단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분을 구분하는 벽이자, 인간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선이었습니다. 박사장의 집은 위로 뻗어 있었고, 기택의 집은 아래로 파묻혀 있었습니다. 빛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지만, 그 빛은 반지하 창문을 통해 완전히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묘한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계단은 늘 같은 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올라간다고 믿었던 그 순간, 누군가의 발아래로 다시 미끄러졌습니다. 이건 단지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상징했습니다.

    저는 두 번째 관람 때, 기택이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제 마음도 함께 내려앉았습니다. 그의 발자국 소리는 묘하게 사람의 숨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무겁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소리는 마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세상의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박사장의 생일 파티 장면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그 계단이 얼마나 잔인한 상징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위에서는 웃음과 축하가 넘쳤지만, 아래에서는 절망과 피비린내가 뒤섞였습니다. 같은 공간, 다른 세계. 그 둘은 절대 만나지 않아야 했지만,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모든 것을 계산한 듯 연출했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그 움직임은 시선의 이동이자, 권력의 흐름이었습니다. 관객은 그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신도 모르게 계급의 사다리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계단은 집 안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우리 사회에도, 회사에도, 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내려갑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멈춰 있습니다.

    기생충의 가장 탁월한 점은 바로 이 ‘보편성’입니다. 이야기는 한국의 이야기이지만, 세계 어디에서나 통합니다. 2020년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가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이건 단지 한국의 계급 이야기나, 가난한 가족의 생존기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위계의 구조’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에 이렇게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 지하실의 사람은 나일지도 모릅니다.” 조용히, 들키지 않게,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제 자신을 본 것 같았습니다.

    💬 계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세상의 모형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오르고, 누군가는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아직 이름도 불리지 못한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5. 다시 보며 달라진 마음 — 침묵 속에서 들린 울음

    처음 볼 때 웃겼던 장면들이, 두 번째 볼 때는 이상하게 슬펐습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기우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더 크게 들렸습니다. 편지 속 기우는 말했습니다. “아버지, 돈을 벌어 그 집을 살게요.” 그 문장은 겉으론 희망 같았지만, 사실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현실이 아니라 꿈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그 꿈을 차갑게 잘라냈습니다. 기우의 상상 속 장면이 끝나고, 화면은 다시 어두운 반지하로 돌아갔습니다. 빛은 없고, 바람은 멈췄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절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절망을 받아들이는 기우의 담담한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포기와 체념이 아니라, 묘한 성숙이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가였습니다. 그는 가난을 미화하지도, 부를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보다 위를 본다”는 습관 같은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시선이 불행의 시작이자, 동시에 희망의 마지막 불씨였습니다.

    두 번째 관람 때는 인물들의 대사가 다르게 들렸습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무 냄새가 없는 사람.” 이 대사가 이전에는 단순한 풍자로 들렸다면, 이제는 사회의 본질을 찌르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은 냄새 없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나 냄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냄새가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제가 본 ‘나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어딘가에서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또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저. 그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 기생충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거울’이 되었습니다.

    💬 두 번째로 본 ‘기생충’은 첫 번째와 달랐습니다.
    그땐 웃었지만, 지금은 울었습니다. 이 영화는 변하지 않는 세상보다, 그 세상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우리 자신을 보여주었습니다.

    6. 관객들이 자주 묻는 이야기 — 기생충 FAQ

    1. Q.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5년 현재 넷플릭스, 왓챠, 티빙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자막·해설 버전도 지원되어 재관람용으로 추천드립니다.
    2. Q. 실화인가요?
      A. 실화를 바탕으로 하진 않았지만, 201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주거 양극화와 청년 실업 등 현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입니다.
    3. Q. 왜 제목이 ‘기생충’인가요?
      A. 봉준호 감독은 “모두가 서로에게 기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습니다. 즉, 단순히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기대는 게 아니라, 부자 또한 가난한 이들의 노동과 희생에 의존한다는 의미입니다.
    4. Q.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A. 많은 관객이 꼽는 장면은 ‘폭우 후 반지하로 돌아가는 길’과 ‘생일 파티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특히 전자는 현실의 잔인함을, 후자는 인간의 본능적 폭발을 상징합니다.
    5. Q.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느꼈나요?
      A. 웃음보다 오래 남은 것은 불편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진짜 공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 본 글은 개인적 경험과 감상을 중심으로 작성된 영화리뷰 콘텐츠입니다.
    ※ 불법 스트리밍·다운로드 링크를 제공하지 않으며, 모든 이미지는 CJ ENM·KOFIC 공식 보도자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익적 비평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