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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법한 이야기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은 단순한 범죄 재현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공기’와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부모로서,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는 여전히 불편하게 남아 있습니다.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김상경, 변희봉, 박해일
개봉 2003년
장르 범죄, 스릴러, 드라마
OTT 2025년 현재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에서 감상 가능
이 영화는 실제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무런 이유 없이 여성들이 살해당했던 그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시절엔 CCTV도 없고, DNA 분석 기술도 지금처럼 정밀하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언제나 한 발 앞서 있었고, 수사기관은 그를 쫓기보다 ‘때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바로 그 시대의 무력한 공기 속에서 시작합니다. 시골 형사 박두만은 ‘감’으로 수사하는 인물이고, 서울에서 내려온 서태윤은 ‘증거’로 수사하려는 냉정한 형사입니다. 둘의 방식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결국 같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세상은 더 어둡고, 인간은 더 작아졌습니다.
2.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흔들림
영화의 첫 장면은 평화로운 논밭입니다. 아이들이 노는 들판 옆에서 시체가 발견되며 평온은 한순간에 깨집니다. 그날 이후 마을의 공기는 바뀌었습니다. 밤마다 내리는 비는 공포의 신호가 되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전조처럼 느껴졌습니다.
형사 박두만은 ‘범인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감’을 따라 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붙였고, 억울한 사람들이 폭행당하고 자백을 강요당했습니다. 그 시절의 수사는 정의가 아니라 체면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서울 형사 서태윤이 합류하지만, 그는 이 낡은 수사 체계 안에서 점점 무너져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범행은 더 정교해지고, 수사는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사건 현장에는 증거가 남지 않고, 유일한 단서는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이라는 미신 같은 소문뿐이었습니다. 마지막엔 그 어떤 과학도, 그 어떤 ‘감’도 진실에 닿지 못합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가’라는 공허함만 남습니다.
3.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시대의 그림자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범인보다 무서운 것은 사회의 무관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중심인 수사’를 말하지만, 정작 사람은 부서지고 지워지는 존재로 그립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관객이 직접 목격자가 되도록 유도했습니다. 우리의 눈이 곧 수사관의 눈이며, 그 시선의 흔들림은 죄책감으로 남습니다.
그는 또한 ‘폭력의 세대’를 보여줍니다. 공장, 논, 허름한 파출소 — 모두가 피로하고 삭막합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생계에 매달리고, 그 사이에서 진짜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감독은 그런 사회의 어둠을 낭만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외면했는가’를 묻습니다.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던 촬영 기법도 주목할 만했습니다. 진흙탕에서의 추격, 어두운 터널, 흐릿한 조명 아래의 얼굴 — 모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불안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불안이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의 마음까지 따라붙습니다. 결국 <살인의 추억>은 범인을 찾는 영화가 아니라, ‘그 시절 우리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를 묻는 영화였습니다.
4. 지금 다시 본다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
2025년 현재, 이 영화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제는 CCTV도, AI 수사 시스템도 있지만, 인간의 본능과 폭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범죄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뉴스를 켜면 여전히 누군가의 생명이 쉽게 무너집니다. 감시와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악의는 더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영화들이 때로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범죄를 재현함으로써, 혹시 누군가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과 사이코패스적 욕망을 자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그런 불편함을 통해 사회가 어디까지 허락해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껴야만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은 결국 2019년에 용의자 이춘재의 DNA가 확인되면서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1980년대에 저지른 살인 사건 대부분은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는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법체계가 얼마나 늦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이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새로운 사건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도 처벌 가능’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족에게는 이미 늦은 정의였습니다.
5. 부모의 시선으로 본 진실과 불안
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밤마다 아이가 늦게 들어오면, 어둠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영화 속 피해자들이 겪은 공포를 떠올리면, 그저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박두만이 관객을 바라보는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눈빛은 ‘너는 괜찮은가’라고 묻는 듯했습니다. 그는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놓쳤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피해자든, 가족이든, 혹은 우리 자신이든 말입니다.
살인의 추억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진실’이라는 단어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유효한지 돌아보게 합니다. 정의는 법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걸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이 영화는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입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FAQ)
- Q.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5년 현재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 Q. 실제 사건을 다룬 건가요?
A. 네, 1986~1991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 Q. 범인은 잡혔나요?
A. 2019년 DNA 일치로 용의자 이춘재가 확인되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 Q. 공소시효는 지금도 있나요?
A. 현재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유사 사건은 언제든 처벌 가능합니다. - Q. 영화가 범죄를 자극하지 않나요?
A. 폭력을 미화하지 않으며, 사회의 무력함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중심입니다. - Q. 부모 입장에서 보기 괜찮은가요?
A. 정서적으로 무거운 장면이 있으나,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Q. 결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진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집니다. - Q. 재관람 가치가 있나요?
A. 첫 관람은 사건의 긴장감과 범인을 추적하는 흥미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는 인물의 감정과 인간적인 후회, 그리고 그 시대의 아픔이 더 깊게 느껴집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영화 리뷰이며 상업적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정보는 2025년 기준이며, 이후 OTT 제공 여부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폭력·선정적 표현은 배제하였으며, 공익적 비평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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