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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The Apartment with Two Women) | BIFF 5관왕·베를린 초청작 리뷰와 결말 해석
돈먹는 애플 2025. 10. 26. 23:57목차
사랑과 폭력 사이, 모녀가 서로를 증언하는 방식.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온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0. 영화 기본 정보 및 핵심 요약
감독 김세인
출연 임지호, 양말복
개봉 2021년
장르 드라마, 심리극
OTT wavve(대여), 왓챠(개별 구매), Apple TV 및 YouTube(유료 시청 가능)
JustWatch에서 보기
핵심 요약: 모녀 관계 속에 감춰진 폭력과 의존, 돌봄과 죄책감의 굴레를 해부하는 강렬한 심리 드라마였습니다.
1. 줄거리
영화는 한 평범한 아파트 단지의 교통사고로 시작됩니다. 아침 출근길, 모녀가 함께 길을 건너다 차에 치입니다. 놀랍게도 운전석에는 딸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영화는 시간의 순서를 뒤섞으며 진실을 탐색합니다. 처음에는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법정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곧 이야기는 모녀 사이의 뒤틀린 관계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딸 희숙(임지호)은 성장 과정 내내 어머니(양말복)의 통제 아래 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희숙을 위해 희생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은 일방적인 소유욕과 두려움으로 변해 있습니다. 희숙은 대학 진학 대신 어머니의 사업을 돕고, 모든 결정을 어머니의 허락 없이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희숙은 집을 떠나 독립을 선언하지만, 독립의 첫날부터 사고가 일어납니다. 영화는 이 사고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억압의 폭발이라는 점을 점진적으로 보여줍니다.
법정에서 희숙은 자신이 학대받아왔음을 증언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진술은 감정의 동요와 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명확하지 않습니다. 변호사와 검사, 판사 모두 진실을 해석하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관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딸을 “지키려 했다”라고 주장하며, 사회가 자신 같은 여성을 외면했다고 항변합니다. 그 말에는 모성의 굴레와 세대 간의 단절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희숙은 법정 밖에서 점점 무너집니다. 자신이 어머니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증언의 순간마다 다시 살아나고, 법정은 더 이상 정의의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부딪히는 심리의 무대로 변합니다. 결국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대신, 그 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된 것인지 보여주는 선택을 합니다.
스포일러 포함: 결말 바로보기
결말에서 어머니는 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하지만 희숙은 법정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서 아무런 해방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어머니의 속옷 서랍을 열어봅니다. 같은 속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그 순간 희숙은 자신이 여전히 어머니의 그림자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카메라는 조용히 멀어지며 두 사람의 삶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한 사건 설명이 아니라, 모녀의 감정이 부딪히는 심리적 재판이었습니다. 관객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판단하기보다, 인간관계의 복잡한 층위를 목격하게 됩니다.
2. 제작 비하인드: 감독의 의도와 제작 배경
김세인 감독은 “가정 내 폭력은 소리 없는 전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실제 법정 기록, 가정폭력 상담센터 사례, 피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모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세대 간 억압과 죄책감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는 피해자나 가해자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파괴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촬영은 대부분 실제 아파트 세트를 개조해 진행되었습니다. 폐쇄적인 구조와 어두운 조명은 인물의 심리적 고립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카메라는 인물과 일정 거리를 두며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합니다. 이 거리감은 관객이 어느 한쪽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두 인물을 동시에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특히 거울을 활용한 구도는 인물의 분열된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배우 임지호는 “딸 희숙은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며 연기 과정에서 감정적 소모가 컸다고 말했습니다. 양말복은 실제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사랑을 통제와 동일시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녀는 이 역할을 통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캐릭터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수상을 시작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해외 언론은 “한국 독립영화의 가장 섬세한 심리 해부극”이라 평했고, Senses of Cinema는 “김세인 감독은 여성 서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음악과 사운드도 인상적입니다. 배경음악이 거의 없이 인물의 호흡과 방의 소음을 강조함으로써, 현실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아냈습니다. 편집은 느리지만 긴장감 있게 구성되어, 침묵 속의 폭력이 어떻게 쌓이는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관객으로 하여금 ‘관계의 폭력’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들었습니다.
3. 심층 분석: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단순히 모녀 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가정 내 권력 구조, 젠더 권력, 돌봄의 윤리를 교차시켜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킵니다. 감독은 “가족이 가장 안전해야 하는 곳인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가장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모녀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희숙은 어머니에게 폭력을 당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동정하고 보호하려 합니다. 이 모순은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모성 신화’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같은 속옷’이라는 상징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상처의 메타포입니다. 속옷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타인에게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여성의 몸과 삶이 얼마나 사회적 통제 속에 놓여 있는가”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영화 속 재판 장면은 제3자의 언어로 관계가 정의되는 폭력성을 보여줍니다. 법은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자의 감정이나 맥락을 담기에는 너무 건조합니다.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기억과 고통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사법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의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폭력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사회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한국의 가정폭력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의 70% 이상이 “사랑해서 참았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문장은 영화 속 어머니의 대사와 겹칩니다. “나는 너를 사랑했어. 그게 왜 죄가 돼?” 이 대사는 사랑이 폭력으로 변질됨을 정확히 드러냅니다. 감독은 이 질문을 통해 ‘돌봄의 윤리’가 언제 폭력으로 전환되는가를 묻습니다.
영화는 또한 여성 간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희미한 빛을 남깁니다. 희숙이 마지막에 어머니의 속옷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절이 아니라 이해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증오와 사랑, 피해와 가해, 단절과 연민이 교차하는 그 순간, 감독은 관객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같은 속옷을 입은 채, 같은 상처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4. 영화 총평: 나의 경험과 재관람의 가치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단순히 충격적이라기보다 숨이 막혔습니다. 그 이유는 이야기의 리얼리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장면도 과장되지 않았고, 현실의 대화처럼 평범했지만 그 속에 담긴 폭력이 너무도 사실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딸의 대화는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말 같았습니다. “너 위해서 한 말이야.” “엄마는 너밖에 없어.” 이 흔한 말들이 얼마나 무겁게 들릴 수 있는지를 영화는 보여줍니다.
엄마로서, 또 딸로서 이 영화를 본 제 감정은 복합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려다 오히려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감독이 보여주는 건 특정 가정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반복해 온 관계의 패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관람했을 때, 전에는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메라의 고정된 시선, 인물의 숨소리, 방 안의 그림자 영화가 끝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 각자의 기억 속 어딘가에 ‘또 다른 속옷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재관람할 때마다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 볼 때는 “왜 저렇게까지 했을까?”였다면, 두 번째에는 “혹시 나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로 바뀌었습니다. 그건 죄책감이자 또 성찰도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우리 각자가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비추어 보게 합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영화이지만, 이런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성숙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5. FAQ: 자주 묻는 질문 8가지
- Q. 이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wavve, 왓챠, Apple TV, YouTube 등에서 대여 또는 구매하여 감상할 수 있습니다. - Q. 실화 기반인가요?
A. 특정 인물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가정폭력 사례와 실제 법정 증언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 Q. 폭력 또는 민감한 장면 수위는 어떤가요?
A. 신체적 폭력보다는 정서적 긴장감이 중심이며, 청소년 관람 시 보호자 지도가 필요합니다. - Q. 단순한 장르 영화로 볼 수 있나요?
A. 심리극이자 사회 비평 영화로, 일반적인 드라마보다 철학적 깊이가 있습니다. - Q. 부모 시선에서 본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사랑이 통제와 동일시되는 현실 속에서 ‘좋은 부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 Q. 비슷한 추천작이 있을까요?
A. <벌새>, <우리의 20세기>, <엄마와 나>, <더 로드 홈> 같은 작품을 함께 보면 좋습니다. - Q. 재관람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A. 인물의 시선, 거울 구도, 사운드 편집의 미세한 변화에 주목해 보면 감독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 Q. 지금 다시 볼 가치가 있나요?
A. 네. 시대와 세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관계의 폭력’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 경험과 해석을 담은 영화 리뷰이며 상업적 목적이 아닙니다.
OTT 정보는 2025년 기준이며 이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은 포함하지 않았으며, 본 글은 공익적 비평 목적에 기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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