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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포스터 출처: Wikimedia Commons – Anarchist from Colony 공식 극장용 포스터 이미지

    1. 영화 개요

    영화 「박열(Anarchist from Colony, 2017)」은 일제강점기 실존 인물 박열과 일본인 동지 가네코 후미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 드라마다. 이준익 감독의 연출 아래, 이제훈과 최희서가 각각 박열과 후미코 역을 맡았다. 제목의 ‘Anarchist from Colony’는 문자 그대로 ‘식민지 출신의 무정부주의자’를 뜻하며,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영화의 모든 철학이 압축되어 있다. 즉,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의 자유를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사극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빌려와 현재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2017년 개봉 당시, 한국은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이준익 감독은 그 사회적 공기를 정확히 읽어내며, 1923년의 박열과 2017년의 우리를 같은 질문 위에 세운다. “나는 지금 어떤 목소리로 세상과 싸우고 있는가?”

    현재(2025년 기준) 「박열」은 넷플릭스와 웨이브(Wavve) 등 주요 OTT 플랫폼에서 시청 가능하다. OTT 시대에 다시 보는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물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인간 선언’으로 읽힌다. 시대는 변했지만, 억압의 구조는 여전히 존재하고,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2. 줄거리와 스포일러

    1923년 9월,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일본 사회는 혼란과 공포에 빠진다. 유언비어가 퍼지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거짓 소문이 급속히 확산된다. 그 결과, 일본 민중들은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여론을 돌리기 위해 ‘적당한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조선 출신 무정부주의자 박열’이 표적이 된다.

    박열은 일본에서 문학 동호회를 꾸리고, 조선의 독립과 자유를 글로 외치던 청년이었다. 그는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불령사(不逞社)’라는 단체를 만들고, 사회 체제와 황실 권력을 비판하는 잡지를 발행했다. 일본 당국은 그를 체포하고 ‘황태자 암살 모의’라는 혐의를 씌운다.

    하지만 박열은 재판정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황태자를 죽이려 했다. 나는 조선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그럴 이유가 충분하다”라고 선언한다. 그 발언은 일본 법정을 발칵 뒤집는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정점이자, 실존했던 역사적 기록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제국주의의 위선을 조롱하며, 권력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뒤집어버린다.

    후반부에서 후미코는 일본 감옥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감당해야 하는 대가’로 표현된다. 영화는 후미코의 시체를 바라보는 박열의 침묵으로 끝난다. 그 침묵은 절망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사명이다. 그가 이후에도 투옥 상태에서 글을 쓰고, 조선 독립 이후에도 생존자로 남았다는 사실은 영화가 던진 메시지를 더욱 묵직하게 만든다.

    3. 시대적 맥락 — 부모 세대를 통해 본 박열

    나는 1979년생이다. 내게 일제강점기는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부모 세대에게 그것은 여전히 가슴속 깊은 상처였다. 아버지는 종종 “그땐 입을 닫고 살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박열’은 바로 그 ‘입을 닫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말로 인해 감옥에 갔지만, 그 말이 역사를 바꾸었다.

    부모 세대의 시선에서 보면, 박열은 무모하고 위험한 젊은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40대의 나는 이제 그 무모함이야말로 시대가 필요로 했던 용기였다는 것을 안다.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었지만, 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면 인간의 영혼이 마른다. 영화 ‘박열’은 바로 그 마른 영혼을 다시 흔드는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시대의 폭력을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는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권력과 언어의 불균형’을 정면으로 겨눈다. 내가 부모 세대의 침묵을 이해하면서도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 영화에 있었다. 나는 박열을 통해 내 부모 세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세대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실감했다. 그것은 “언제까지 말하지 못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4. 박열 인물 분석 — ‘불온함’으로 세상을 깨우다

    이제훈이 연기한 박열은 단순히 ‘열혈 청년’이 아니다. 그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혁명가다. 감정보다는 논리로 싸우며,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폭력이 아니라 언어다. 재판 장면에서 박열은 판사보다 더 논리적으로, 검사보다 더 도발적으로 말한다. 그 태도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로써 제국을 해체하는 행위다.

    이 인물의 진짜 매력은 ‘자기모순’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외치면서도 일본의 친구들과 어울렸고, 인간의 평등을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박열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그는 성인(聖人)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관객은 그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한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불온하고 불안한 젊은이로 보여준다. 이 지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웅’은 박제되지만, ‘불온한 인간’은 살아 숨 쉰다. 이준익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영화는 역사보다 인간의 이야기로 남는다.

    5. 가네코 후미코 — 경계 없는 자유의 초상

    후미코(최희서)는 일본 사회에서도 소외된 인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여성으로서, 피억압자로서, 박열과 같은 이방인을 사랑한다. 그녀는 사회의 경계를 스스로 넘어선다. 그녀의 대사는 언제나 날이 서 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 이 한 문장은 영화 전체를 요약한다. 그녀는 신의 구원 대신 인간의 책임을 선택한 인물이다.

    후미코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그녀의 존재는 박열의 신념을 완성시키는 거울이 된다.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사상적 동지이자 정신적 결합으로 묘사된다. 그들의 대화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언어다.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6. 이준익 감독의 시선 — 역사와 인간의 중간지대

    이준익 감독은 언제나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해왔다. 「사도」, 「왕의 남자」, 「동주」에서도 그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권력이 인간을 정의할 수 있는가?” 「박열」은 그 질문의 가장 날카로운 형태다. 이준익은 영화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실의 잔혹함을 건조하게 드러내면서,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유도한다.

    그의 연출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대사와 이미지의 리듬이 완벽하다. 감옥, 재판정, 거리 — 이 세 공간만으로 영화의 대부분이 진행되지만,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다. 특히 카메라가 인물의 눈을 오래 응시하는 장면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분노’가 느껴진다. 이준익은 ‘말의 힘’을 누구보다 신뢰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박열은 바로 그 철학의 결정체다.

    7. 79년생 관객의 감정선 — 세대가 달라도 통하는 분노의 온도

    20대의 나는 저항을 ‘멋’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저항이란 ‘생존의 방식’ 임을 깨닫는다. 부모 세대가 침묵으로 시대를 견뎠다면, 박열은 말로 그 시대를 찢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침묵의 세대와 언어의 세대 사이에서, 어느 쪽이 옳은지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제는 안다. ‘말하는 사람’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불편함’을 남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짜 성장의 증거다. 40대의 나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울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서 오래 울린다. 「박열」을 본 뒤 며칠 동안, 나는 부모 세대의 침묵과 내 세대의 분노를 동시에 생각했다. 결국 두 세대는 같은 질문을 공유한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8. 총평 — 지금 우리가 ‘박열’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

    「박열」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언어의 복원’이며,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침묵의 시대를 넘어서라’고 요구하는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의 이야기를 통해 ‘저항의 언어’를 복원했고, 이제훈과 최희서는 그 언어를 생생한 감정으로 전달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불온함을 감수할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박열이 싸운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별점으로 표현하자면 5점 만점 중 4.8점. 그러나 수치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남긴 “말의 흔적”이다. 그 흔적이 세대를 넘어 우리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 해석과 세대적 관점에서 작성된 심층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