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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작은 아씨들 리뷰: 낡은 일기장을 덮고 나의 엔딩을 직접 써 내려가는 법

    나의 초라한 원고가
    누군가의 우주가 되는 순간

    비 오는 주말, 서재 구석에서 먼지 쌓인 낡은 일기장 하나를 꺼냈습니다. 한때는 세상을 바꿀 것 같았던 원대한 꿈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저 낯선 이의 기록처럼 느껴지더군요. 현실이라는 파도에 깎여 둥글둥글해진 제 마음을 보며 문득 그레타 거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엔 그저 자매들의 따뜻한 성장 드라마로만 보였던 이 이야기가, 어른이 된 지금은 왜 이토록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치열한 생존기'로 읽히는 것일까요?
    영화는 루이자 메이 올콧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지만, 감독은 이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19세기 미국,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한 마치 가(家)의 네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합니다. 배우를 꿈꾸는 메그, 작가가 되고 싶은 조, 피아노를 사랑하는 베스, 그리고 화가를 꿈꾸는 에이미. 감독은 이들의 찬란했던 과거와 고단한 현재를 교차시키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가졌던 꿈의 가격은 얼마였으며, 그 값을 치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의 영화입니다.
    "내 가난이 내 재능보다 크다", 에이미의 서늘한 진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인물은 막내 에이미였습니다. 과거의 버전들에서 에이미는 그저 사랑에 눈먼 철부지로 그려지곤 했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전략가로 등장합니다. "결혼은 경제적 거래"라고 차갑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재능이 '천재'가 아님을 인정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그녀의 모습은 서늘할 정도로 영리합니다. 저는 에이미가 파리의 화실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붓을 내려놓을 때, 사회 생활을 하며 수없이 좌절했던 저 자신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반면 주인공 조(시얼샤 로넌)는 여자의 인생에 정해진 엔딩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펜을 듭니다. 원고료 한 푼에 출판사와 협상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글을 수정해야 하는 그녀의 분투는 고고한 예술가의 모습이라기보다 삶을 지탱하려는 한 명의 성실한 '가장'에 가깝습니다. 사랑보다 고독이, 낭만보다 월세가 더 무거운 현실을 아는 어른들에게, 조의 눈물 섞인 외침은 단순한 투정 그 이상으로 다가옵니다.

    부모님의 침묵이 가르쳐준 것들

    영화 속 어머니 '마미'가 "나는 하루도 화가 나지 않은 적이 없단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저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들의 모든 응석을 받아주며 평온한 얼굴로 앉아 계시던 저의 부모님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자식이라는 우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의 욕망과 불길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사셨을까요? 부모님께 투정 부리던 어린 시절의 제가 너무나 부끄러워져 잠시 화면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되고 보니, 이제야 부모님의 굽은 등이 보입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의 결말을 자식들의 행복으로 대신 써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저 역시 언젠가 제 아이에게 제 젊은 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 할 때가 오겠지요. 그때 저는 조처럼 당당하게, 혹은 에이미처럼 솔직하게 제 삶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얼마 남지 않은 제 인생의 중간 페이지들을 채우며,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직 저만의 진심이 담긴 문장을 써 내려가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가 생겼습니다.

    빛과 어둠, 기억과 현실이 공존하는 영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천재성은 시간의 재구성에 있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황금빛으로 가득한 과거의 기억과, 시리고 차가운 푸른빛으로 묘사되는 현재의 현실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는데, 이는 우리가 견디고 있는 오늘이 사실은 어제의 따뜻한 추억을 연료 삼아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네 배우의 연기 또한 결점을 찾기 힘듭니다. 특히 시얼샤 로넌과 플로렌스 퓨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은, 이 영화가 왜 오스카의 주목을 받았는지 단번에 증명해 냅니다.
    이 영화는 150년 전 미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자신의 꿈과 지독한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조가 자신의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경이롭게 지켜보는 장면은 관객에게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공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나의 엔딩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마음 깊이 남았던 질문들

    1. 원작 소설과 결말이 왜 다른가요?

    소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은 실제로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당시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주인공을 결혼시키는 결말을 써야만 했습니다. 영화는 조가 쓴 소설의 엔딩과 조의 실제 삶을 겹쳐놓으며, 작가에 대한 존경과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동시에 담아낸 아주 영리한 변주를 보여줍니다.

    2. 왜 지금 시대에 이 고전이 다시 환영받을까요?

    경제적 독립과 주체적인 삶에 대한 갈망은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의 고충을 이토록 세련되게 다룬 작품은 드뭅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나'로 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3. 어른이 되어 다시 본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어릴 땐 주인공 조의 '성공'에만 환호했지만, 이제는 에이미의 지독한 현실감마미의 억눌린 고백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결혼은 경제적 거래"라고 읊조리며 자신의 재능에 매달리던 붓을 꺾는 에이미를 보며, 사회생활 하면서 결혼도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를 조금씩 깎아냈던 우리의 지난날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삶은 결코 예쁜 동화처럼 흐르지 않지만, 그 투박하고 거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진짜 용기라는 사실... 그것이 이 영화가 나이 든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인생 평점: ★★★★★ (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