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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날, 저녁을 거의 못 먹었습니다. 식탁에 앉았는데 밥이 넘어가질 않더라고요.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2019, 갈데르 가스텔루우루티아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품입니다. 섬네일이 독특해서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한 상태였습니다. 아직도 가끔 밥을 먹다가 이 영화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이 감옥의 규칙
설정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거대한 수직 구조의 감옥이 있습니다. 수백 개 층으로 되어 있고, 각 층에 두 명씩 수용되어 있어요. 건물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려 있고, 거기를 통해 거대한 플랫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 플랫폼 위에는 최고급 요리가 가득 차 있어요.
규칙은 단순합니다. 플랫폼이 자기 층에 멈추면 먹을 수 있고, 지나가면 끝. 1층은 산해진미를 그대로 먹을 수 있지만, 아래로 갈수록 위층에서 먹다 남긴 것만 내려옵니다. 50층쯤 되면 이미 음식은 엉망이고, 100층 아래에서는 접시 위에 뼈다귀 하나 남아있지 않습니다. 200층 밑에서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진짜 이유
잔인한 장면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닙니다. 물론 잔인하긴 합니다. 하지만 진짜 불편한 건 다른 데 있어요.
매달 층이 랜덤으로 바뀝니다. 이번 달에 6층에서 호화롭게 먹던 사람이, 다음 달에 132층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래에서 굶던 사람이 갑자기 위층에 배정받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나도 아래에 있어봤으니 적당히 먹고 남기자"라고 할까요?
거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산해진미가 있으면 최대한 먹어치웁니다. 심지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가져가서 버리기도 합니다. 자기가 아래에 있었을 때의 고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요.
전 이부분에서 너무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게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한정된 자원, 위에서 독식하는 구조, 위치가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 그런데도 자기 몫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 이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축소판 아닌가요.
판나코타 한 접시에 담긴 메시지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이 최하층까지 내려가면서 판나코타 한 접시를 지켜내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의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시스템이 아무리 잔인해도, 그 안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온전히 지켜내려는 시도 자체가 저항이라는 것.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집어삼키는 세상에서 "이것만큼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행위 자체가, 이 지옥 같은 구조에 대한 유일한 반항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왜 자꾸 생각나는 걸까
왜 자꾸 생각나는 걸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하단걸 느꼈습니다. "모두가 자기 몫만 먹으면 전원이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못 하는가?" 이 한 문장에 인간의 불평등 문제가 전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본 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떠오릅니다.
이상한 건, 제 일상생활과 비슷해 보였어요. 마트에서 1+1 행사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걸 더 집어 드는 제가 생각나고요. 회사에서, 사회에서, 먼저 올라가야만 하는 구조 속에서 저도 모르게 조급해지는 마음이 생각납니다. 나는 과연 몇 층에 있는 사람일까, 그리고 위에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이 따라붙어요.
특히 위층에 있다가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돕니다. 우리는 지금의 자리를 영원할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건강도, 돈도, 운도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가진 걸 조금 내려놓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에는 영웅이 없습니다. 누군가 완벽하게 구조를 바꾸지도 못하고, 모두를 구해내지도 못합니다. 그 점이 오히려 현실처럼 보였어요. 세상은 거대한 한 번의 혁명보다, 아주 작고 어설픈 선택들이 모여 조금씩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강심장이시라면 추천합니다. 밥 먹기 직전에는 절대 보지 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세요. 불쾌한데 자꾸 생각나는 묘한 영화입니다. 어쩌면 그 불쾌함이, 우리가 아직 완전히 무감각해지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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