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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이야기는 누가 쓰고 있나요?

    좀 철학적인 질문처럼 들릴 수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게 나 자신인가, 아니면 주변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인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2019)을 보고 나서 이 질문을 계속 씹게 됐습니다.

    150년 된 소설이 2019년에 다시 나온 이유

    〈작은 아씨들〉의 원작은 루이자 메이 올콧이 1868년에 쓴 소설입니다. 마치 가의 네 자매 — 메그, 조, 베스, 에이미 — 의 성장기를 다룬 고전이죠. 수십 번 영화화됐고, 원작 자체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읽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왜 2019년에 또 만들었을까요?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단순히 자매들의 성장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자기 목소리로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어요. 시대는 19세기이지만, 이 질문은 분명히 지금 시대를 향해 있습니다.

    원작과 영화의 가장 중요한 차이

    원작에서 조 마치는 결국 결혼합니다. 프리드리히 베어 교수와요. 하지만 올콧 본인은 이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출판사가 "여주인공은 결혼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고, 올콧은 마지못해 그 결말을 썼어요. 실제로 올콧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거윅 감독은 이 역사적 사실을 영화 안에 직접 녹여냅니다. 영화 속 조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원고를 넘기면서 "여주인공이 결혼하지 않는 결말로 쓰고 싶다"고 말합니다. 편집자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주인공이 결혼하거나 죽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 결국 조는 타협하고, 결혼하는 결말을 씁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결혼 장면을 해피엔딩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건 현실이 아니라 조가 타협해서 쓴 소설 속 결말"이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이 이중 구조가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부분이에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결혼이 아닌 이유

    결혼 장면보다 더 나중에, 이 영화의 진짜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조가 인쇄소에서 자기 책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장면이에요. 금박으로 제목이 찍히고, 페이지가 묶이고, 표지가 붙는 과정을 조가 두 눈을 빛내며 바라봅니다.

    거윅 감독이 이 장면을 영화의 마지막에 배치한 건 분명한 의도입니다. "결혼이 여성의 행복한 결말"이라는 150년 된 공식을 조용히 뒤집어놓은 거예요. 조 마치가 진짜 원했던 건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시얼샤 로넌의 조 마치

    시얼샤 로넌은 조 마치를 에너지 넘치고, 고집스럽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연기합니다. 이전 버전들의 조 마치와 비교하면, 거윅-로넌의 조는 훨씬 더 입체적이에요. 자신감 넘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독립적이면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흔들리는 모습이 균형 있게 담겨 있습니다.

    플로렌스 퓨의 에이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작에서 에이미는 종종 "얄미운 막내"로만 기억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에이미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보여줘요. "여자가 돈을 벌 수 없는 세상에서, 결혼은 경제적 선택"이라는 에이미의 대사는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씁쓸하게 울립니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

    2019년 작품인데 지금 봐도 새롭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여전히 비슷한 타협을 하며 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 대신 안정적인 일을 선택하거나, 말하고 싶은 것 대신 기대에 맞는 답을 하거나. 조 마치의 이야기는 "타협하더라도 핵심만큼은 포기하지 마라"는 메시지로 저에게 읽혔습니다.

    비슷한 결의 영화를 더 보고 싶으시다면, 같은 감독의 〈레이디 버드〉(2017)를 추천합니다. 그레타 거윅 특유의 유머와 따뜻함, 그리고 여성 서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작품이에요. 〈바비〉(2023)도 전혀 다른 장르이지만 거윅 감독만의 시선이 살아있는 재밌는 작품입니다.

    누군가 정해준 결말이 아니라, 비록 타협이 섞여 있더라도 결국 자기 이름으로 남긴 이야기.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한 줄을 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