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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내 교복 주머니 속 삐삐가 울리던 시절...
우리가 몰랐던 '언니'들의 진짜 이야기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 앞으로 달려가 삐삐 음성 사서함을 확인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에 열광하던 때였죠.
그때 지하철에서 정장을 빼입고 출근하던 '커리어우먼' 언니들은 제 눈엔 그저 멋진 어른처럼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보며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화려했던 90년대의 공기 속에서, 우리 언니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진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는지를요.
내가 사회로 나가기 직전, 언니들이 닦아놓은 길
영화 속 자영이 상사들의 구두를 닦으며 미소 짓는 장면을 보는데, 문득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나갔을 때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저는 79년생이라 IMF 직후의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때 제가 누렸던 최소한의 권리들이 사실은 영화 속 자영이나 유나 같은 인생 선배 언니들이 온몸으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균열 덕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질문에 "우리가 이 일을 제일 잘하니까요"라고 답하던 그녀들의 모습에서, 제가 잃어버렸던 직업적 자존감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어느덧 조직의 중견이 된 저의 모습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과연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옳은 일을 위해 내 기득권을 걸 수 있는 용기가 남아 있을까요? 얼마 남지 않은 저의 커리어 속에서 제가 지켜야 할 것은 높은 직함이 아니라, 1995년 그 뜨거웠던 여름에 언니들이 보여주었던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 순수한 진심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 아이가 제 젊은 날의 사진을 보며 "아빠는 어떤 세상을 살았어?"라고 물을 때, 부끄럽지 않게 대답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영화를 보고 동년배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실제 90년대 사무실 풍경과 비슷한가요?
네,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여직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책상을 닦거나 커피를 타는 모습은 당시의 보편적인 풍경이었죠. 영화는 그 불편한 현실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적인 유대를 정직하게 담아냈습니다.
2. 제목이 왜 '영어토익반' 인가요?
당시 '토익'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라, 학벌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사다리'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어를 배우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당당하게 내기 위한 '언어적 해방'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어 큰 울림을 줍니다.
3. 지금 우리 세대에게 이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요?
79년생인 우리에게 이 영화는 '기억의 복원'입니다. 우리가 사회로 나가기 전,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지치고 무기력해진 40대 직장인들에게 "Tiny drops make an ocean(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이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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