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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아이를 돈 대신 받아왔다.
진짜 가족의 의미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그저 눈물 쏙 빼는 신파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부모님의 야윈 등을 마주하는 지금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마주한 나의 부끄러운 자화상
영화 속 두석의 굽은 등을 보는데 자꾸만 저의 부모님이 겹쳐 보였습니다. 자식인 저를 남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려보내기 위해, 당신들은 세상이라는 차가운 일터에 자신의 청춘과 꿈을 통째로 담보 잡히고 사셨던 것은 아닐까요? 두석이 승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갈아 넣었듯이, 우리 부모님에게도 자식이라는 존재는 당신들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해줄 유일한 '보물'이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무릎이 아프다며 웃으시는 부모님을 뵐 때마다, 이제는 제가 그분들의 든든한 담보가 되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의 시간 속에서, 제가 갚아야 할 이자는 돈이 아니라 더 자주 손을 잡아드리고 체온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가르쳐 주었습니다. 승이가 성인이 되어 기억을 잃어가는 두석을 찾아내 '아빠'라고 부르던 그 절규는, 저에게도 뒤늦은 효도의 참회처럼 들려 한참을 소리 내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두려움도 엄습했습니다. 훗날 내가 더 나이 들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 때, 나의 아이들도 나를 영화 속 승이처럼 따뜻하게 기억해 줄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지만,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었던 기억만 있다면 그 삶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묵직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혼자 조용히 되뇌어 본 질문들
1. 이 영화는 단순한 신파인가요?
누군가는 뻔한 눈물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눈물은 결코 식상하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이별이 있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을 주는 엔딩은, 이 차가운 세상을 버티게 하는 아주 뜨거운 위로였습니다.
2. 왜 제목이 '담보'여야 했을까요?
가장 비인간적인 경제 용어인 '담보'가, 영화가 끝날 즈음엔 서로의 생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가장 숭고한 약속의 의미로 치환됩니다. 단어의 온도 변화를 통해 감독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족의 정의를 묻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지금 시대에도 이런 이야기가 유효할까요?
오히려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지금의 사회에서 더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핏줄 중심의 고정관념을 깨고, 함께 살며 밥을 나누는 정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지 일깨워주는 이 영화는 가족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게 하며,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가 기댈 곳은 결국 '진심'뿐이라는 사실을 따뜻하게 위로하듯 건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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