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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 출처: IMP Awards 제공 공식 극장용 포스터 이미지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무관심이었습니다.”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은 단순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나눔의 가능성을 동시에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한 장면이, 끝내 이 영화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1. 첫 장면에서 느낀 인상

    처음엔 솔직히 뭔가 실험영화인가 싶었습니다. 색도 흐리고, 사람도 거의 안 나오고, 그저 콘크리트 벽이랑 침대 하나. 그게 다였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그 단조로움이 오래 남았습니다.

    고렝이 눈을 뜰 때, 저는 괜히 숨을 죽였습니다. 조명이 너무 차가웠어요. 빛이라기보단, 냉장고 안에서 나오는 불빛 같은 느낌.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기보다, 그냥 ‘버티는 공간’ 같았습니다.

    잠시 후, 천장 위로 뚫린 사각형 구멍이 보였는데 그 안으로 뭔가 내려왔습니다. 음식이 가득한 플랫폼이었어요. 처음엔 ‘아, 밥 주는 시스템인가 보다’ 했는데, 곧바로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저 아래엔… 또 누가 있구나.” 그제야 구조가 이해됐습니다. 위층에서 먹고, 남은 게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 사실만으로 등골이 식었습니다.

    플랫폼이 내려가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걸 그냥 보고 있는 시간 자체가 괴로웠습니다. 고렝이 잠깐 그 음식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을 듯 말 듯하는데, 그 주저함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라도 저랬을 거야.’ 배고프고, 두렵고, 그래도 양심이 남아 있는 그 미묘한 표정. 그때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설정 놀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음악도 없고, 대사도 거의 없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대사보다 컸습니다. 누군가의 숨소리, 식탁 위의 포크 부딪히는 소리, 그런 사소한 소리들이 오히려 공포였습니다. 빛보다 소리가 더 잔인하게 느껴진 영화는 진짜 오랜만이었습니다.

    엔딩까지 보고 나서도 이 첫 장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예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배고픈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요.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정적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시작이었습니다.

    2. 한 조각의 빵 앞에서 사라진 인간다움

    이 영화에서 가장 잔혹했던 건 피도 폭력도 아니었습니다. 한 조각의 빵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층마다 다른 냄새, 다른 표정, 다른 숨소리가 있었습니다. 음식이 내려올 때마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울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이 단 하나의 테이블 위에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위층에선 웃음이, 아래층에선 절규가 들렸습니다. 그 차이가 너무 선명해서 숨이 막혔습니다.

    음식이 담긴 플랫폼이 천천히 내려올 때, 위층 사람들은 접시를 아무렇게나 뒤적이며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손에 묻은 소스와 고기를 서로의 옷에 문지르며 깔깔 웃었습니다. 그 밑으로 그 음식이 내려갔습니다. 남겨진 건 부서진 케이크 조각과 찢어진 고기 껍질뿐이었습니다. 아래층 사람들은 그 조각들을 손으로 쓸어 모으며 입에 넣었습니다. 무엇이 고기고 무엇이 접시의 파편인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저는 손이 저절로 멈췄습니다. 그 화면이 너무나 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에서 가장 잊히지 않았던 건 사람들의 ‘눈’이었습니다. 위층의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밑층보다 먼저 먹는 자신’을 확인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엔 승리감과 동시에 이상한 광기가 있었습니다. 아래층 사람들은 그 눈빛을 올려다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땅만 봤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준 잔혹함의 본질이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인간들, 단지 생존만을 위해 고개를 숙인 인간들 말입니다.

    어느 순간, 주인공이 말합니다. “음식을 조금씩만 먹으면, 모두가 살 수 있어요.” 그 말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슬펐습니다. 정답이 뻔히 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문장은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똑같이 공허했습니다. ‘모두가 조금만 덜 가지면 된다.’ 그 쉬운 말이 왜 이렇게 어렵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은 위층에 있는 사람이 아래층을 향해 소리칩니다. “너희가 미개해서 그런 거야!” 그 말이 지나치자, 아래층에서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아니라, 오물이 떨어졌습니다. 그 장면에서 웃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풍경 같았습니다. 권력과 계급, 위와 아래, 모두 같은 인간인데 서로를 모욕하는 구조. 감독은 그것을 아주 단순한 설정으로 보여줬습니다. 층이 다르고, 테이블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 안에 사회 전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주인공의 얼굴도 변했습니다. 그는 처음엔 예의를 지켰습니다. 음식을 나누려 했고, 위층에 말로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가 굶고, 고통받고, 배신당하면서 서서히 달라졌습니다. 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눈빛이 날카로워졌습니다. 그 변화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결국 이 시스템에 물들어갔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과연 끝까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밑층의 사람들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고, 위층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주인공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폭력을 멈추기 위해, 스스로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용기였는지, 아니 어쩌면 절망이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건 동정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위층’이 되었을 때, 그를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다움은 사라지고 본능만 남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먹습니다. 도덕이 사라진 자리엔 배고픔만 남습니다. 그런데도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나누면 모두가 산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잔혹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몸부림 하나가, 이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속에서 유일한 온기였습니다.

    💬 한 조각의 빵 앞에서 사람들은 달라졌습니다. 굶주림은 본능을 깨웠고, 본능은 양심을 삼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간이길 바란 한 사람의 눈빛이 이 영화의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3. 아래로 내려가야만 보이는 진실

    처음엔 단순한 구조라 생각했습니다. 위층은 배부르고, 아래층은 굶는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층이 바뀔수록, 저는 점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이 영화는 누가 나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잔인했습니다.

    주인공이 스스로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 얼굴엔 이상한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어떤 확신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 세상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다는 것을. 배부른 곳에서는 결코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스스로 그 깊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한참 동안 숨을 멈췄습니다. 그 내려감이 마치 인간의 ‘내면으로 내려가는 여정’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이 층을 지나갈 때마다, 공기의 냄새가 바뀌었습니다. 위층의 공기는 따뜻하고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하지만 아래로 갈수록 공기는 썩은 냄새와 함께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 냄새 속에는 시간이, 절망이, 그리고 포기한 사람들의 흔적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층마다의 공기 변화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연출 중 하나였습니다. 감독은 대사보다 ‘공기’로 세상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인간의 본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가 내려갈수록 사람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위에서는 욕설이 있었고, 명령이 있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히려 침묵이 많았습니다. 그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더 잔혹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포기했고, 누군가는 서로를 의심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서로를 찢어먹은 흔적이 바닥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잔해를 밟고 주인공은 계속 내려갔습니다. 그의 손에는 음식이 아니라 ‘희망의 조각’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그 조각을 나누며 내려갔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는 믿었습니다. 조금만 나누면, 모두가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층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이미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멈춰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단 한 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플랫폼 아래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배고픔도, 공포도, 이미 초월한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상하게 울컥했습니다. 이 아이가 이 모든 층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모든 진실이 그 눈동자 속에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단순히 ‘희망의 상징’으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시스템 안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는 순수함의 잔재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는 먹지 않았고,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존재했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구원이었습니다. 감독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보여주었습니다. 진짜 구원은 위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밑에서부터 피어나는 거라는 걸 말입니다.

    플랫폼이 다시 위로 올라갈 때, 주인공은 아이를 태웠습니다. 그가 손을 놓는 순간, 플랫폼은 천천히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아이를 올려 보내는 그의 표정은 비극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평온했습니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이해였습니다. 그는 이제 알았습니다. ‘위’가 구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아래’에 남았습니다. 그 선택은 슬펐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플랫폼이 떠나고, 화면에는 오직 침묵만 남았습니다. 그 침묵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따뜻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조금만 내려가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말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조용한 진실이었습니다. 사람은 내려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배고픔, 두려움, 그리고 이해. 그 밑바닥에서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구원은 시작됩니다.

    💬 ‘더 플랫폼’의 진짜 무대는 위가 아닌 아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건 언제나, 그의 높이를 낮췄을 때부터였습니다. 내려가는 용기가 곧 인간성의 증거였습니다.

    4. 이 영화가 내게 남은 건, 배고픔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플랫폼은 여전히 제 머릿속을 오르내렸습니다. 그 안의 사람들, 그들의 표정, 그들이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낯설 만큼 현실 같았습니다. 배고픔보다 더 무거웠던 건, 서로를 외면하던 그 시선들이었습니다. 그 시선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더 플랫폼〉은 잔인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잔인함은 칼이나 피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누군가 굶주려도, 누군가 소리쳐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습니다. 영화 속 위층 사람들의 웃음이 스크린 너머에서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였을 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이 영화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거울이 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이 밑으로 내려갈 때의 그 시선이었습니다. 위층에서 아래층을 바라보던 눈빛은 늘 경멸과 우월이 섞여 있었는데, 그가 직접 그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땀으로 번들거리고, 두려움으로 얼룩지고, 그럼에도 서로를 바라보려는 그 얼굴들이었습니다. 그 얼굴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더 아팠습니다.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음식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 보던 그 눈빛이었다는 것을요.

    이 영화의 잔혹함 속에는 이상할 만큼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피 묻은 손으로 빵을 나눠주던 장면, 눈빛으로 서로를 확인하던 짧은 시간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 그건 작은 장면들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마다 저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구조 안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피곤했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그 평범한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이 사람들도 플랫폼 속에서 각자의 층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위층이거나 아래층일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서 있든, 서로를 외면하는 순간 그 구조는 완성됩니다.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잔인한 진실이었습니다.

    〈더 플랫폼〉은 단순히 불평등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요. 대신 감독은 “당신은 지금 어느 층에 서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밥을 먹을 때마다, 누군가를 지나칠 때마다, 그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나는 위를 보고 사는 사람일까, 아니면 아래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일까. 그 물음이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엔딩에서 아이가 플랫폼 위로 떠오를 때, 저는 숨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건 단순한 희망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우리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습니다. 아직 누군가는 나누려 하고, 아직 누군가는 믿으려 하고, 아직 누군가는 밑으로 내려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말한 구원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간이 인간답게 남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가 모든 절망보다 강했습니다.

    〈더 플랫폼〉을 본 뒤로, 저는 누군가의 밥그릇을 볼 때마다 잠시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미안함도, 죄책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이라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고 단단한 선함을 보여줬습니다. 그 선함이 너무 작아서 쉽게 보이지 않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습니다.

    💬 〈더 플랫폼〉은 절망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다시 찾아주는 영화였습니다. 먹을 것이 사라져도 마음만은 나눌 수 있다는 걸 이 잔혹한 영화가 조용히 가르쳐주었습니다.

    5. 관객이 자주 묻는 이야기 (FAQ)

     

    1. Q.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5년 현재 넷플릭스(Netflix)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중 유일하게 HD·4K 자막 버전을 제공합니다.
    2. Q. 이 영화는 실화인가요?
      A. 실화는 아니지만, 스페인 사회의 계층 불평등과 식량 분배 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Q.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A. 감독 갈데르 가스텔루 우루티아는 인터뷰에서 “인간의 도덕성은 배고픔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4. Q. 결말은 희망적인가요?
      A. 아이의 존재는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절망 속에서도 남아 있는 ‘순수함’이 세상 위로 올려 보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구원은 위에서 오지 않고, 인간의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5. Q. 비슷한 감성의 영화는?
      A. 〈설국열차〉(2013) — 폐쇄된 공간에서의 계층 갈등 〈큐브〉(1997) — 인간 심리를 시험하는 실험적 구조물 〈패러사이트(기생충)〉(2019) — 빈부의 벽을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한 영화 세 작품 모두 〈더 플랫폼〉과 닮은 인간의 본성 이야기를 다룹니다.

    ※ 본 글은 실제 관람 후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모든 정보는 넷플릭스(Netflix), IMDb, 영화진흥위원회(KOFIC), KMDb 공식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 불법 스트리밍 또는 다운로드 링크는 포함하지 않았으며, 공익적 비평과 예술적 감상 목적의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