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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땅에 뿌리 내린 할머니의 보따리와 우리 엄마들의 위대한 생존기 (영화 미나리 리뷰)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늘 그랬듯이.
    낯선 땅에 뿌리 내린 할머니의 보따리와 우리 엄마들의 위대한 생존기

    마트 한구석에서 미나리 한 단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 특유의 알싸하고 싱그러운 향을 맡으니 문득 79년생인 제가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 뒤편 냇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미나리 밭이 떠오르더군요. 그때는 그저 흔한 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를 본 뒤로, 저에게 미나리는 더 이상 나물이 아닌 '질긴 생명력'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낯선 미국 땅, 바퀴 달린 트레일러 집에서 시작된 한 가족의 처절한 뿌리 내리기... 오늘은 그 어떤 화려한 액션보다 뜨거웠던 우리 부모님들의 진심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아칸소의 광활한 들판입니다. 한국에서 건너와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쫓는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엄마 모니카(한예리). 이 부부의 갈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꿈을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힌 가장과, 그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가족들. 이 척박한 땅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온 구원자는 화려한 영웅이 아닌, 보따리 가득 고춧가루와 멸치를 싸 들고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였습니다.
    가장 소름 돋았던 지점은 순자가 손주 데이빗에게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라고 말하며 냇가에 씨를 뿌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제이콥이 파낸 깊은 우물은 말라버리고, 비싼 농기구와 화학 비료는 가족을 빚더미에 앉게 했지만, 순자가 아무렇게나 던져둔 미나리는 스스로 물을 정화하며 무섭도록 푸르게 자라납니다. 데이터와 계획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지혜가, 가장 밑바닥에서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영화는 지독하리만큼 담담하게 분석합니다.

    "윤여정, 연기가 아닌 삶의 냄새를 풍기다"

    배우 윤여정의 연기는 이 영화의 영혼이나 다름없습니다.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쿠키를 구워주고 다정하게 안아주는—을 거부하고, 레슬링을 좋아하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산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가장 '한국적인 할머니'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그녀의 투박한 손마디와 무심한 듯 던지는 농담들은 관객의 방어 기제를 무너뜨립니다. 배우 윤여정이 살아온 굴곡진 인생이 영화 속 순자의 눈빛과 겹쳐지는 순간, 우리는 연기가 아닌 한 인간의 위대한 생존기를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순자가 병으로 쓰러진 후, 자신의 실수로 농장을 태워버리고 망연자실해 할 때, 가족들이 그녀를 원망하는 대신 함께 거실 바닥에 눕는 장면은 이 영화의 철학적 정수입니다. 비극조차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견뎌낼 때 비로소 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성과만을 따지는 차가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위로였습니다. 한예리 배우의 절제된 눈물과 스티븐 연의 고뇌 섞인 뒷모습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족의 중력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우리 엄마의 보따리가 나를 키웠음을 이제야 압니다

    영화 속 순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보따리를 푸는 장면을 보는데, 자꾸만 저의 부모님이 겹쳐 보여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79년생인 제가 이만큼 자라기까지, 우리 부모님 역시 자신들만의 '아칸소 들판'에서 사셨던 것은 아닐까요?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밥 한 숟가락을 위해, 당신들은 세상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자신의 꿈과 자존심을 통째로 보따리에 싸서 구석에 밀어두고 사셨을 것입니다. 나는 순식간에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부모님의 세월은 나를 지탱해 주느라 이미 하얗게 새어버린 뒷모습을 보며 목이 메어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의 비정함에 조금씩 익숙해진 저의 모습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과연 영화 속 순자처럼, 내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타인을 향해 "미나리는 원더풀하단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는 사람일까요? 90년대의 낭만이 사라진 지금, 이제는 생존과 책임을 걱정해야 하는 차가운 현실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족이란 완벽한 성공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가장 초라한 밑바닥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다시 뿌리 내릴 준비를 하는 동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간은 결국 유한한 시간을 살지만, 윤여정 배우님이 보여준 그 '쿨한' 저항 정신과 사랑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영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훗날 제 아이에게 "엄마가 힘들 때마다 너라는 미나리가 내 곁에서 푸르게 자라줘서 버틸 수 있었단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제이콥이 냇가에 무성히 자란 미나리를 보며 "할머니가 자리를 참 잘 잡으셨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부모 세대의 희생이 마침내 자식 세대의 구원이 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눈부신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우들의 눈빛이 완성한 경이로운 가족 초상화

    스티븐 연의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개인의 야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CG보다 더 경이로운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한예리 배우 역시 아들을 지키기 위해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 엄마의 전형을 섬세하게 연기하여 영화의 몰입도를 극도로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그녀의 목소리가 가진 차분한 힘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불안감을 따뜻하게 덮어주었습니다.
    심지어 어린 데이빗 역의 앨런 김조차 천진난만한 유머로 관객의 마음을 훔칩니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낯선 세계와 할머니의 기괴한 조화는, 삶이 왜 비극이면서 동시에 희극인지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즐기고 잊어버리는 팝콘 무비가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그 연약함을 이겨내는 연대의 위대함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미나리'라는 상징을 통해 훌륭하게 녹여낸 세기의 마스터피스입니다.
    결국 〈미나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을 숨 쉬게 하는 당신만의 미나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 작은 존재인 우리가, 왜 이토록 치열하게 사랑하고 버티며 살아야 하는지... 영화는 말합니다. 우리가 내일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타지에서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를 부르는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와 할머니의 보따리 같은 '진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영화관을 나선 뒤 마주한 서울의 밤공기가 그날따라 유독 싱그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관람 후 가슴 속에 남았던 질문들

    1. 왜 제목이 '미나리' 인가요?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며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식물입니다. 이는 낯선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민자 가족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부모 세대의 희생이 다음 세대를 위한 '정화'의 과정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2. 윤여정 배우가 맡은 순자는 왜 전형적인 할머니가 아닌가요?

    감독은 할머니를 단순히 자애로운 존재로 그리기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개성을 가진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할머니 역시 꿈과 취향이 있는 주체적인 인간임을 보여주며, 그녀의 사랑이 '희생'을 넘어선 '선택'임을 강조하는 장치입니다.

    3. 마지막 화재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이콥이 공들여 쌓아온 '물질적 성공(창고)'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불길 속에서 가족은 서로를 구하며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파괴를 통한 가족 공동체의 재탄생을 의미합니다.

    4. 폴(Paul)이라는 캐릭터는 왜 등장하나요?

    광신도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신념을 가진 폴은, 세속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제이콥과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비이성적으로 보일지라도 무언가를 온전히 믿는 마음이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5. 영화의 엔딩은 해피엔딩인가요?

    A.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이지만, 냇가에 무성히 자란 미나리를 발견하며 끝이 납니다. 이는 인위적인 노력보다 자연스러운 생명력과 가족의 사랑이 결국 승리할 것임을 암시하는, 아주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최종 평점: ★★★★★ (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