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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욕창(A Bedsore)은 요양병원과 노인 돌봄의 현실을 고요하게 비춘 영화입니다. 치매, 노화, 가족의 죄책감, 그리고 돌봄 노동의 고단함까지 — 누구나 겪게 될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합니다.

※ 본 포스터 및 스틸컷은 정보 제공 목적의 비상업적 인용이며, 모든 저작권은 제작사 및 배급사에 있습니다.
1. 영화 소개와 요약
영화 욕창은 요양병원에서 벌어진 한 노인 환자의 욕창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피부에 생긴 상처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욕창’은 단순한 의학 용어가 아니라, 돌봄의 책임이 흐릿해진 사회의 단면을 상징합니다. 감독은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도, 자극적인 대사도 없습니다. 대신 요양병원 특유의 고요한 공기, 약 냄새, 환자복의 부스럭거림,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채웁니다. 그 조용함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이 흔들리는 장면들을 마주합니다. 이 영화는 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욕창은 단순히 환자의 상처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무관심의 흔적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노년을 준비하고 있나요?”
2. 내가 겪은 돌봄의 현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제 시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모시면서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나빠지지 않아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며 친구분들과도 잘 지내 셨습니다. 그러다 점점 식사량이 줄고, 걸음이 느려지고, 몸의 균형을 바로 잡지 못하시다 욕실에서 넘어지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수술은 위험해 시술만 하게 되었습니다. 누워 지내셔야 하셔서 집에서 모시는 게 어려워지며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병실 침대에 누워 제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집에 가고 싶다. 하루만이라도.”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죄책감과 밀려왔습니다. ‘이곳이 안전하니까 다행이다’라는 마음과, ‘내가 편하려고 어머니를 떠밀었나’라는 후회가 함께 있었습니다. 요양병원에 다니며 저는 돌봄의 현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간병인들은 하루 10시간 넘게 서서 일했습니다. 치매 환자가 한밤중에 화장실을 찾을 때마다, 그들은 잠든 눈을 비비며 달려왔습니다. 요양보호사 한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하루 종일 손잡아드리는데, 한 번이라도 ‘고맙다’는 말 들으면 그게 힘이에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그분들의 일상이었습니다. 욕창을 치료하던 간병인의 손, 무표정하게 서 있는 보호자, 퇴근 후 복도 끝에 서서 한숨 쉬는 요양보호사의 뒷모습. 그건 제가 실제로 본 ‘현장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손을 꼭 잡고 있으면 “고맙다” 하시며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돌봄’이란 결국 마음의 온도라는 걸 배웠습니다. 영화는 그 단순한 진리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돌봄은 제도나 비용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온기를 지키는 일입니다.
3. 현장을 닮은 이야기의 힘
감독 심혜정은 이 영화를 준비하며 실제 요양병원과 돌봄 현장을 오랫동안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시선은 차갑지 않습니다. 냉정한 고발 대신, 그 속의 인간을 담으려 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리얼리즘을 넘어, 한 편의 조용한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옵니다. 카메라는 늘 고정되어 있습니다. 누워 있는 노인의 손, 간병인이 들고 있는 약병,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사람들은 매일 싸우듯 버팁니다. 제가 봤던 요양병원의 하루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환자의 욕창을 씻기고, 다시 붕대를 감고, 식사를 돕고, 약을 챙기고, 그 반복 속에서도 보호자에게는 늘 “괜찮습니다”라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절제는 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감독은 불필요한 음악을 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침묵이 이 영화의 음악입니다.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은 각자의 기억을 꺼내듭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누군가의 ‘돌봄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되, 판단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누구도 악인으로, 누구도 완전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저 인간으로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감독이 전하고자 한 ‘존엄’의 진짜 의미였습니다.
4. 영화가 던진 질문,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
이 영화는 “누가 돌봄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은 ‘사랑’으로, 병원은 ‘제도’로, 요양보호사는 ‘노동’으로 돌봄을 수행하지만 그 어느 쪽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결국 모두가 피로하고, 모두가 외롭습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병원에 두고 돌아올 때마다, 저는 그 복도 끝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은 매번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영화 속 가족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이 영화는 그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돌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입니다. 하지만 구조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 작은 행동이 욕창보다 더 깊은 상처를 막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노인을 ‘보살핌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묻습니다. “노인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 아닙니까?” 그 질문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존엄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숨 쉬는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5. 다시 보고 싶은 이유
욕창은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에 더 깊이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슬프고 무겁게 느껴졌지만, 다시 보면 그 안에는 사랑과 인간애가 숨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치매가 깊어져 제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그분은 제 손을 잡으며 “따뜻하다” 하셨습니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이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대신하는 듯했습니다. 욕창은 단순한 상처가 아닙니다. 돌봄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를 되묻는 상징입니다. 이 영화는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불편함 속에서 진심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본다는 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나의 노년’을 미리 마주하는 일입니다.
👉 이 글은 개인의 실제 경험과 영화 감상을 바탕으로 한 리뷰입니다.
모든 내용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익적 비평에 기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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